장 피에르 물랭

Jean Moulin
프랑스 프랑스인 1899–1943 ✕ 고문 후 사망

분열된 레지스탕스를 묶은 공화주의자

그는 독일군의 허위 서명 강요에 맞서 명예를 훼손하느니 자결을 택하려 했다.

장 물랭은 프랑스의 고위 관료이자 공화주의자로, 나치 점령에 맞선 국내 레지스탕스를 자유 프랑스와 연결한 조직가였다. 그는 샤를 드골의 위임을 받아 경쟁하던 저항운동들을 조정하고, 정치세력과 노동조합까지 포괄하는 국민저항위원회를 세웠다. 그의 통합 작업은 독립성을 지키려는 여러 세력의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1943년 체포와 고문으로 중단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국민저항위원회 결성, 1943년

1943년 초 레지스탕스 안에서는 인물 간 갈등과 정치적 노선 차이가 겹쳐 분열 위험이 커졌고, 1942년 8월 툴루즈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이미 저항운동과 노동조합, 정당을 함께 묶는 기구 구상을 내놓았다. 물랭은 처음에는 자신의 권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이 안에 소극적이었고, 보고서를 런던으로 보낸 모랑다를 나무랐다. 그러나 여러 지도자가 이 구상을 받아들이자 그는 직접 드골에게 제안하기로 했다. 이 계획은 드골의 권위를 보강해 연합국과 프랑스인에게 그를 각인시키고, 미국이 앙리 지로를 앞세우려는 시도와 공산주의 진영의 레지스탕스 장악 시도를 함께 막으려는 성격도 지녔다.

1913년 5월 27일 파리 르푸르 거리 48번지의 은밀한 자리에서 국민저항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고 물랭이 의장을 맡았다. 여기에는 여덟 개 저항운동 조직, 지하에서 재건된 CGT와 CFTC 두 대표적 노동조합, 그리고 제3공화국의 주요 정당 여섯 곳의 대표가 참여했다. 물랭은 1942년 6월부터 전문가위원회를 두어 전후 사회 개혁 구상을 정리해 왔고, 그 작업은 1944년 3월 15일 채택된 국민저항위원회 강령으로 이어졌다. 강령에는 즉각적 행동계획과 함께 보통선거 회복, 언론의 자유, 노동조합 결성권, 사회보장 등 해방 이후 조치가 담겼다. 물랭은 '국민저항위원회의 프로그램'이라는 문건으로 각 조직이 드골을 공동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고, 이 통합은 레지스탕스를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동시에 레지스탕스 각 조직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요구와 계속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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