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스터 덜레스

John Foster Dulles
미국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미국 미국인 1888–1959 ○ 자연사

동맹망으로 냉전을 밀어붙인 미국 외교가

1954년 베를린 회의에서 그는 자유선거 없는 전독일 정부 구상을 거부하고 서방의 선거 절차를 내세웠다.

존 포스터 덜레스는 변호사 출신의 미국 외교가로, 전후 국제질서를 동맹과 군사적 억지의 틀로 재편하려 했다. 그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서 대소 봉쇄를 넘어 공산주의 세력의 후퇴를 압박하는 노선을 폈고, NATO를 중심으로 서방의 결속을 강화했다. 1954년 베를린 회의에서 그는 몰로토프의 집단안보 구상과 전독일 정부 제안에 맞서 자유선거를 거친 통일을 주장했으며, 그해 서독의 NATO 가입을 관철해 유럽 분단의 제도화를 선택했다. 이 노선은 서방 진영의 안정과 미국의 영향력을 넓혔지만, 이란·과테말라 정권 전복 지원과 핵 위협을 포함한 개입주의라는 책임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대담한 정책"에서 굳어진 해방론

덜레스는 1939년 저서 《전쟁과 평화와 변화》를 비롯한 강연과 글을 통해 국제 문제에 대한 입장을 꾸준히 밝혔고, 1941년에는 미국 기독교연합회가 세운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의 기초 연구위원회' 의장을 맡아 1943년 '평화의 여섯 기둥' 계획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때까지 그의 구상은 연맹이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을 앞세운 것이었다.

여기서 전환이 일어난 것은 1940년대 후반이었다. 전후 세계공산주의에 맞설 개념틀로서 그는 민주당의 봉쇄론에 대항해 공산주의 세력을 밀어내는 '롤백'(rollback)을 내세웠고, 1950년에는 봉쇄 정책을 비판하는 《전쟁 아니면 평화》를 펴내 봉쇄가 '해방' 정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의 롤백은 공산주의를 세력 범위 안에 가두는 데 그치지 않고 밀어내겠다는 공세 개념이었다.

1952년 5월 19일 《라이프》지에 실린 글 「대담한 정책」은 이 노선을 대중에게 천명한 대표적 문서다. 그는 봉쇄를 '부정적 정책'으로 규정하고 소련의 팽창을 끝내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대규모 보복 능력을 갖춘 '자유세계'를 조직해 공격이 어디서 일어나든 즉각 되받아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모스크바의 지배 아래 있는 민족들이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미국이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했고, 동유럽과 아시아의 위성국에 대한 '해방 프로그램'과 구체적 조치를 제시했다.

같은 해 이 글은 공화당 강령에 반영되어 봉쇄를 '부정적' 정책으로 규정했고,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서 이 노선을 동맹망 구축과 결합시켰다. 다만 그가 말한 해방은 실제로 동유럽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대에 이르러서야 그 구호가 동구권 정권 붕괴와 함께 다시 소환되었다.

덜레스 자신의 《라이프》 기고문과 저서는 반공 노선의 강경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냉전 초기 미국 외교가 동맹과 군사 억지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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