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칙령으로 1830년 7월 혁명을 부른 과격 왕당파 총리
1780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총애한 폴리냐크 공작 부인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1804년 카두달·피슈그뤼의 나폴레옹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1813년까지 갇혀 지냈다. 왕정복고 뒤 1820년 교황에게서 대공 칭호를 받았고, 1823년 루이 18세가 그를 영국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왕정복고기 과격 왕당파의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1829년 8월 샤를 10세가 그를 외무장관에 앉혔고 곧 각료회의 의장이 되었다. 그의 내각은 알제 원정을 시작했고, 1830년 7월 칙령을 내려 7월 혁명을 불렀다. 혁명 뒤 체포되어 귀족원에서 종신 금고형을 받았으나 1836년 사면으로 추방형으로 바뀌었다. 1847년 생제르맹앙레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쥘 오귀스트 아르망 마리 드 폴리냐크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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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1829
프랑스 왕정 국가기관영국 주재 대사
외교·국제활동 -
1829–1830
프랑스 왕정 국가기관각료회의 의장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789가족과 함께 망명
- 1804–1813카두달 음모 연루로 투옥
- 1820교황에게서 대공 칭호
- 1823–1829영국 주재 대사
- 1829.08.08–1830.07.29각료회의 의장
- 1830.07.257월 칙령 공포
- 1830–1836종신 금고형, 암 요새 수감
- 1836사면으로 추방형으로 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