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사의 정치적 갈등을 해명한 역사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20세기 프랑스사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줄리언 잭슨은 20세기 프랑스사를 중심으로 연구한 영국 역사가로, 프랑스 대공황과 인민전선에서 점령과 드골주의까지 정치적 선택의 조건과 결과를 추적했다. 『프랑스 인민전선』은 개혁과 재무장, 민주주의 방어와 대중운동의 관계를 정치·사회·문화의 차원에서 분석해 이 시기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1940년 프랑스의 패배와 독일 점령, 전후 동성애 정치, 1968년 5월을 다루며 현대 프랑스사의 범위를 넓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4영국에서 출생
- 1982케임브리지 대학교 박사 취득
- 1985『프랑스 대공황의 정치』 출간
- 1988『프랑스 인민전선』 출간
- 2001『프랑스: 암흑의 시대』 출간
- 2003퀸메리 런던대학교 역사학과 합류
- 2018드골 전기로 더프 쿠퍼상 수상
- 2023페탱 연구서로 더프 쿠퍼상 수상
관련 역사 사건
페탱 재판 연구와 점령기 협력의 책임 문제
잭슨은 2023년 저서 『재판대에 선 프랑스: 페탱 원수의 사건』(France on Trial)에서 1945년 페탱 재판을 점령기 협력의 책임을 묻는 장으로 삼았다. 그는 피고의 진술 못지않게 증인과 배심원, 변호인, 판사의 태도를 살핌으로써, 적국에서 벗어난 뒤에도 자기 치부와 마주해야 했던 프랑스가 무엇을 드러내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재판은 독일과의 정전 협정과 비시 정권의 협력 정책, 즉 검사 모르네가 '우리 역사에서 지워야 할 4년'이라 부른 문제를 다뤘다.
이 연구는 재판 기록만으로는 점령기를 온전히 읽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 위에 서 있다. 1945년 재판에서는 유대인 문제가 거의 다뤄지지 않았는데, 잭슨은 이를 별도의 장으로 보완한다. 로베르 파크스턴에 따르면 재판 당시에는 절멸 수용소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했고, '강제이송자'라는 말은 대개 저항이나 강제노동으로 끌려간 사람을 가리켰다. 비시 관리들을 재판하면서 일부 피고는 프랑스 유대인의 사망 비율이 다른 서유럽 점령국보다 낮았다는 논리를 폈지만, 파크스턴은 그것이 1940~1941년 비시가 제정한 유대인 제한 조치를 도외시한다고 지적한다.
잭슨은 재판이 독일의 요구에 대한 수동적 대응으로 비시를 그리게 했다는 점도 짚는다. 파크스턴에 따르면 검찰은 적국과의 공모를 규정한 제75조에 의거해 기소했고, 그 결과 국가 혁명의 국내적 기원이 가려졌다. 잭슨은 변론의 주장이 이후 연구로 어떻게 반박되었는지를 보여주며, 페탱 정부가 독일의 요구에 맞선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반동적으로 재편할 기회를 붙잡았다고 본다. 점령 아래에서 서유럽 국가 가운데 프랑스만이 적극적으로 입법했다는 것이다.
이 저서는 페탱을 둘러싼 전후 기억 투쟁과도 맞닿아 있다. 파크스턴에 따르면 페탱은 사형을 선고받고 연령과 1차 대전 공적을 고려해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됫드예섬에서 1951년 사망했으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1951년 페탱 기념 수호 협회가 세워졌고, 1970년대 이후 극우가 그의 기억을 정치적으로 동원했다. 잭슨은 제무르의 발언이 비시 기억이 만든 균열을 넘어 우파를 재편하려는 전략의 일부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극우의 장래는 페탱의 기억을 소환하는 데 있지 않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