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오 안토니오 메야

Julio Antonio Mella
쿠바 쿠바 1903–1929 ✕ 암살

25세에 암살된 쿠바 공산당의 학생 창립자, 반제국주의 순교자

1928년 12월, 멕시코시티의 격렬한 당 회의에서 비탈리가 메야에게 소리쳤다 — "잊지 마라: 인터내셔널에서 나가는 길은 둘뿐이다, 제명되거나 죽거나!" 한 달 후 메야는 거리에서 암살당했다.

쿠바 공산당을 공동 창립한 학생운동 지도자로, 아바나 대학에서 반제국주의 학생투쟁을 조직하고 카를로스 발리뇨와 함께 1925년 쿠바 최초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을 세웠다. 마차도 독재에 쫓겨 멕시코로 망명한 후에도 혁명운동을 이어가다 1929년 25세의 나이로 암살당했으며, 쿠바 혁명 좌파의 상징적 순교자로 카스트로 세대에게 계승되었다.

경력 연표

사회주의적 대학 개혁과 암살의 수수께끼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의 혁명 사상은 대학 개혁 투쟁에서 구체화되었다. 그가 1928년 멕시코 망명 중 발행한 잡지 『트렌 블린다도』(Tren Blindado, '장갑열차'라는 뜻으로 트로츠키가 내전 시절 붉은 군대를 지휘했던 장갑열차를 연상시킨다)에 기고한 「대학 개혁의 사회주의적 개념」에서, 메야는 대학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제도라고 분석하며, 진정한 대학 개혁은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모든 개혁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마지막 전투'를 위한 한 걸음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공산당 내에서 메야의 입지는 불안정했다. 1928년 7월 그는 '트로츠키주의적 견해'를 이유로 멕시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었고, 이탈리아 출신 코민테른 요원 비토리오 비달리(Vittorio Vidali)와 격렬한 갈등을 빚었다. 1928년 12월의 한 당 회의에서 비달리는 메야에게 "인터내셔널에서 나가는 길은 둘뿐이다, 제명되거나 죽거나!"라고 소리쳤다고 전해진다.

1929년 1월 10일, 메야는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와 함께 멕시코시티 거리를 걷다 근거리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멕시코 당국은 처음에 모도티를 용의자로 몰아세웠으나 디에고 리베라 등이 그녀를 변호했다. 공식적으로는 호세 아구스틴 로페스라는 인물이 체포되었으나, 쿠바의 마차도 독재 정권이 보낸 암살자라는 설과 스탈린주의자 비달리가 직접 방아쇠를 당겼다는 설이 오늘날까지 병존한다. 메야는 암살 2주 전에야 멕시코 공산당에 재입당한 상태였다.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 정부는 메야를 마차도 독재에 맞선 순교자로 공식 기념했으며, 그의 흉상은 아바나 대학 인근에 세워져 오늘날에도 맑스주의자들의 참배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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