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바실리예비치 카피토노프

Иван Васильевич Капитонов
소련 러시아 1915–2002 ○ 자연사

브레즈네프 시기 노멘클라투라를 21년간 운영한 인사 책임자

1976년, 당대회 보고서 초안을 본 브레즈네프가 격노했다 — 「카피토노프 자신은 아무것도 쓸 줄 모른다. 그런데도 서기다. 그의 지시로 이 잡담을 꾸며낸 것이다. 당장 불러서 뼈저리게 야단쳐라!」 체르냐예프의 일기 속 한 장면이다.

모스크바 시·주 당 제1서기를 거쳐 1965년 중앙위 서기 겸 조직당사업부장에 올랐고, 이후 21년간 소련 간부 임명 체계 전체를 실무적으로 관장했다.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를 거치며 당 서기국을 지킨 최장수 서기였으나, 정작 정치국원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브레즈네프는 그를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정체기 당관료제의 충성 네트워크와 인사 정체를 가장 오래 떠받친 기술자형 인사관리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흐루쇼프와의 엇갈린 인연 — 이바노보 망명과 귀환

카피토노프는 1951년 가을 모스크바 주당 제2서기가 되면서 니키타 흐루쇼프의 측근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모스크바 주당 제1서기는 흐루쇼프였고, 이듬해인 1952년 8월 카피토노프는 모스크바 시당 제1서기로 승진한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3월, 그는 수도당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전환점은 1957년의 '반당 그룹' 사건이었다. 몰로토프, 말렌코프, 카가노비치 등 스탈린파 원로들이 흐루쇼프 축출을 시도했을 때, 카피토노프는 어느 편에도 확실히 서지 않고 잠적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잠행'에 들어갔다. 아내에게 전화 오는 모든 사람에게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사냥 갔다'고 말하라고 일렀다." 흐루쇼프가 승리하자, 카피토노프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화를 불렀다. 1959년 3월, 흐루쇼프는 그를 모스크바 주당 제1서기에서 해임하고 중앙위 감찰관(인스펙토르)으로 좌천시켰다. 몇 달 뒤 카피토노프는 이바노보 주당 제1서기로 발령 났다: 누가 보아도 모스크바에서의 '명예 망명'이었다.

그러나 이바노보에서의 5년(1959–1964)은 예상 밖의 성과를 낳았다. 카피토노프는 엔지니어 출신답게 지역 산업 건설에 몰두했다. 그의 재임 중 이바노보에는 대규모 캄볼니(소모직물) 콤비나트가 건설되었고, 키네슈마에는 '압토아그레가트' 공장(훗날 AZLK 모스크비치 자동차의 부품 공급 기지)의 기초가 놓였다. 이바노프스키 압토크란 공장의 현대화도 추진되었고, 볼가 강을 가로지르는 철도-도로 겸용 교량 구상도 그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지역 언론과 베테랑들은 카피토노프 시절을 이바노보 주의 '전성기'로 기억한다.

1964년 10월 흐루쇼프가 축출되자, 카피토노프의 '흐루쇼프에게 찍힌' 이력은 오히려 최고의 추천장이 되었다. 새 지도부에 합류한 브레즈네프가 이바노보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나?" 1964년 12월 카피토노프는 중앙위 당기관부장으로 모스크바에 복귀했고, 1년 뒤에는 조직당사업부장 겸 중앙위 서기로 임명되어 향후 21년간 소련 간부 임명 체계 전체를 틀어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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