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닝」 이론을 펴고 처음으로 동성애 처벌 폐지를 공개 요구한 독일의 법률가
1867년 뮌헨의 독일 법률가 대회에서 500명의 회원 앞에 서서 동성 간 성행위의 처벌 폐지를 요구했으나, 장내가 소란에 빠져 연설은 중단되었다.
하노버 왕국의 법률가였다가 동성애 소문으로 공직과 변호사 자격을 잃었다. 1864년부터 남성의 몸에 여성의 영혼이 깃든 「우르닝」(영어로 우라니안) 이론을 펴며 스스로 우르닝임을 밝혔고, 1867년 뮌헨 법률가 대회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처벌 폐지를 공개 요구했다.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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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1879
독립 활동대표
학술·연구
관련 역사 사건
「우르닝」 이론과 1867년 뮌헨 연설
동프리슬란트 아우리히 근처에서 태어나 괴팅겐에서 신학과 법학을, 베를린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1854년 하노버 왕국 힐데스하임의 법원 시보로 있을 때 남자들과 「자연에 반하는 음욕」을 즐긴다는 소문으로 조사를 받자 공직을 떠났고, 1859년에는 변호사 업무도 금지되어 기자·가정교사로 살았다. 1864년부터 열두 권의 『남성 간 사랑의 수수께끼에 관한 연구』를 펴내, 남성의 몸에 여성의 영혼이 깃든 사람을 「우르닝」이라 부르고 이를 병이 아닌 타고난 기질로 보아 처벌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에서 따온 이 말은 영어권에서 「우라니안」(Uranian)으로 옮겨져 에드워드 카펜터와 존 애딩턴 시먼즈 같은 빅토리아 시대 옹호자들이 썼고, 그는 여성 동성애자를 「우르닌데」, 이성애 남성을 「디오닝」이라 불렀다. 그는 스스로 우르닝임을 밝혔고, 1867년 뮌헨 법률가 대회 연설은 독일 최초의 공개적 커밍아웃으로 꼽힌다. 같은 해 프로이센 당국이 그의 자료를 압수해 없앴다. 여러 성 사이의 중간 단계를 설정한 그의 생각은 뒤에 히르슈펠트의 성적 중간 단계론으로 이어졌고, 크라프트에빙도 그의 저술을 읽고 동성애 연구를 시작했다. 1883년 이탈리아 라퀼라로 옮겨 라틴어 잡지를 내다가 1895년 그곳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