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창설의 조용한 설계자, 차리친에서 스탈린과 맞선 트로츠키의 대리인
1918년 1월 브레스트 평화 협상 중, 레닌이 주재한 당 간부회의에서 메호노신은 "우리에겐 실질적 전투력이 없다. 전선은 벌거숭이다. 싸울 수 없다"고 보고했다.
콘스탄틴 메호노신은 적군 창설기의 핵심 군사 조직가로, 1917년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에서 10월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이어 군사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으로서 포드보이스키·스클랸스키와 함께 신생 적군의 골격을 세웠다. 공화국혁명군사평의회 위원으로 여러 전선을 누볐으며, 1918년 차리친에서는 트로츠키가 임명한 남부전선 사령관을 지지하며 스탈린·보로실로프의 독자노선에 맞서 이들을 실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전 후에는 브세보부치를 이끌며 소비에트 체육 시스템의 기초를 닦았고, 이후 고스플란·오소아비아힘·해양연구소 등으로 옮겨갔으며,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된 후 1956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06–1913페름에서 학생혁명조직 참여; RSDLP 입당·볼셰비키; 폭발물 운반·선전물 등사 등 지하 활동
- 1913–1915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두 차례 체포·추방; 카스피해 과학원 해양탐사 참여
- 1915–1917.2파블롭스크 근위연대 예비대대 사병; 병사들 사이에서 볼셰비키 조직 건설
- 1917.4–10볼셰비키 중앙위 군사조직(보옌카) 지도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 7월 봉기 후 크레스티 감옥 수감
- 1917.10–11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참모장; 케렌스키-크라스노프 반격 진압 지휘
- 1917.11–1918.9군사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잠나르콤보옌); 최고군사평의회 위원; 적군편성 전러시아 콜레기야 위원
- 1918.9–1919.7공화국혁명군사평의회(РВСР) 위원; 동부·남부·카스피-카프카스 전선 РВС 위원 — 차리친에서 스탈린과 충돌
- 1920–1926제3군·11군 РВС 위원(소비에트-폴란드 전쟁·바쿠 진입); 브세보부치 책임자; 최고체육평의회 의장; 붉은스포르틴테른
- 1926–1937폴란드 주재 무관; 고스플란 방위부문 책임자; 오소아비아힘; 해양연구소장; 해군정보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