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알렉산드로비치 메호노신

Константи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Мехонош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89–1938 ✕ 처형

적군 창설의 조용한 설계자, 차리친에서 스탈린과 맞선 트로츠키의 대리인

1918년 1월 브레스트 평화 협상 중, 레닌이 주재한 당 간부회의에서 메호노신은 "우리에겐 실질적 전투력이 없다. 전선은 벌거숭이다. 싸울 수 없다"고 보고했다.

콘스탄틴 메호노신은 적군 창설기의 핵심 군사 조직가로, 1917년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에서 10월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이어 군사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으로서 포드보이스키·스클랸스키와 함께 신생 적군의 골격을 세웠다. 공화국혁명군사평의회 위원으로 여러 전선을 누볐으며, 1918년 차리친에서는 트로츠키가 임명한 남부전선 사령관을 지지하며 스탈린·보로실로프의 독자노선에 맞서 이들을 실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전 후에는 브세보부치를 이끌며 소비에트 체육 시스템의 기초를 닦았고, 이후 고스플란·오소아비아힘·해양연구소 등으로 옮겨갔으며,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된 후 1956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체육·스포츠 행정과 대중 шахматы

1921년부터 1923년까지 메호노신은 전군사훈련총국(Всевобуч) 부국장을 지냈고, 1923년 2월 27일 국장에 임명되어 1926년까지 재임했다. 이 조직은 군사훈련과 함께 체육·스포츠 사업도 맡았으며, 메호노신은 체육·스포츠 최고평의회 의장도 겸했다. 당시 스포츠 조직의 방향은 군사훈련 체계와 대중적 문화 활동을 어떻게 연결할지에 달려 있었다. 1922년 12월 그가 치료차 해외에 있을 때 Всевобуч이 적군 참모부의 일반 조직에 편입됐다. 전기 자료는 그가 이 조치에 반발했으며, 이를 기능 축소와 권한 중앙집중화의 첫 단계로 기록한다. 이는 그의 부재 중 이루어졌기에, 그가 조직개편을 주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메호노신의 행정기 아래 шахматы는 군사훈련 기관의 활동에서 대중 스포츠 조직으로 확장되는 경로를 밟았다. 1923년 그와 Б. А. Кальпус, Румянцев, Фрумин은 ОППВ를 창설했다. 그는 1924년 1월 шахматы와 шашки의 조직화를 제안하고, 이를 스포츠의 한 형태로 보았다. 1924년 8월부터 1925년 말까지 기관지 《Красный спорт》의 책임편집자로 일했다. 이후의 학술 연구는 소비에트 시기 초반에 Всевобуч이 대중 체육을 장려하고 1920년에 체육 최고평의회와 шахматный отдел을 설치한 맥락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 연구가 메호노신 개인의 역할을 상세히 밝히지는 않으므로, шахмат 사업의 모든 성과를 그의 개인적 기획으로 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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