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간 CGT를 이끌고 마티뇽 협정에 서명한 생디칼리스트, 노벨 평화상 수상자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이보다 큰 승리는 없었다」, 마티뇽 협정 타결 직후 라디오 연설에서, 1936년 6월
성냥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1909년 서른 살에 노동총동맹(CGT) 사무총장이 되어 1940년까지 이끈 프랑스 노동운동의 얼굴. 혁명적 생디칼리슴에서 출발했으나 1914년 신성동맹을 받아들이며 개혁주의로 옮겨 갔고, 베르사유 조약의 노동 조항 기초와 국제노동기구(ILO) 창설에 참여했다. 1936년 재통합된 CGT를 이끌고 마티뇽 협정에 서명했으며, 비시 정권 아래 억류되어 독일로 이송되었다가 살아 돌아와 1948년 공산당 주도의 CGT에서 갈라져 나온 「노동자의 힘」(FO)의 창립 의장이 되었고 195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5–1906오베르빌리에 성냥 공장 노동자, 아버지를 실명시킨 백린에 맞선 파업으로 해고
- 1909–1940노동총동맹(CGT) 사무총장
- 1914.08반전 총파업 노선을 접고 「신성동맹」 수용, 조레스 장례식에서 연설
- 1919–1921베르사유 조약 노동 조항 기초, ILO 창설 참여; CGT 분열로 혁명파가 CGTU로 이탈
- 1936.03–06재통합 CGT를 이끌고 마티뇽 협정 서명, 조합원 100만에서 400만으로
- 1940–1945비시 정권의 CGT 해산 뒤 가택연금, 1943년 독일 이송·억류
- 1947–1948공산당 주도 CGT와 재분열, 「노동자의 힘」(FO) 창립 의장
- 1947–1954프랑스 경제이사회 의장, 1951년 노벨 평화상 수상
- 1954.04파리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 1914–19181차 세계대전신성동맹을 수용한 노동운동 지도자1914년 반전 총파업 노선을 접고 신성동맹을 수용했다.
- 1907–1919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반전 노선을 접은 프랑스 생디칼리스트1914년 반전 총파업 노선을 접고 신성동맹을 수용했다.
- 1934.01–071934년 2월 6일 파시스트 폭동CGT 사무총장, 2월 12일 총파업 소집자정치 파업을 꺼려 온 CGT를 움직여 공화국 방어를 내걸고 24시간 총파업을 불렀고, 이 파업이 두 노동총동맹의 재통합으로 이어졌다.
- 1934–1938프랑스 인민전선과 1936년 총파업CGT 사무총장, 마티뇽 협정 서명자재통합된 CGT를 이끌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협정을 「노동운동 역사상 최대의 승리」라 불렀다. 조합원은 그해 100만에서 400만으로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