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알렉세예비치 보로닌

Лев Алексеевич Воронин
소련 러시아 1928–2008 ○ 자연사

고르바초프 시기 국가물자공급의 수호자

1990년 말 니콜라이 리시코프 총리가 심장마비로 입원하자 보로닌이 각료회의 의장 대행을 맡았다. 발렌틴 파블로프가 새 총리로 선출된 1991년 1월 14일까지 소련 정부의 일상 운영을 책임졌다.

고르바초프 시기 국가물자공급위원회(Gossnab) 의장(1985~1989)으로서 후기 계획경제의 물자 공급 체계를 총괄했으며, 페레스트로이카의 혼란 속에서도 국가 공급망을 지켜낸 실무형 경제 관료였다. 니콜라이 리시코프 내각의 각료회의 제1부의장(1989~1991)으로 승진하여 경제 운영 전반을 조정했고, 1990년 말 리시코프의 심장마비 시 의장 대행을 맡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고스플란 시절: 초기 경제 개혁 구상 (1983~1985)

1980년 보로닌은 소련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 제1부의장으로 임명되어 니콜라이 바이바코프 의장 아래에서 유리 마슬류코프와 함께 고스플란의 두 명의 제1부의장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보로닌은 민간 경제 부문의 계획을 총괄했고, 마슬류코프는 군수·중공업 부문을 담당했다. 두 사람 모두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신뢰를 받는 측근이었다.

1983년 2월, 보로닌은 중앙 정부로부터 기업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는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1982년 11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말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촉구한 직후였다. 이 제안은 1983년 7월 14일 「공업 생산연합(기업)의 계획 및 경영 활동 권한 확대와 노동 결과에 대한 책임 강화에 관한 추가 조치」(각료회의·중앙위 결정 제659호)로 구체화되었고, 1984년 1월 1일부터 5개 공업 부문에서 '대규모 경제 실험'이 시작되었다. 보로닌은 이 실험의 실행을 감독하는 각료회의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보로닌은 소련 계획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1984년 그는 니콜라이 티호노프 당시 각료회의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광범위한 성장 방식이 초래한 과도한 일자리 창출이 노동 생산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후일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개혁 논리와 일치하는 인식이었다.

1985년 10월 바이바코프가 물러나고 니콜라이 탈리진이 고스플란 의장으로 임명되자, 보로닌은 동년 11월 고스플란을 떠나 각료회의 부의장 겸 국가물자공급위원회(고스스나프) 의장으로 전보되었다. 고스플란에서 고스스나프로의 이 경로는 선임자 베니아민 딤시츠도 밟았던 전형적인 소련 경제 관료의 이력 경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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