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위안훙

黎元洪

우창 봉기 때 반강제로 도독에 추대된 신군 장교, 두 차례 대총통

후베이 황피 출신으로 톈진 수사학당을 나와 청일전쟁에 참전했고, 뒤에 후베이 신군의 제21혼성협을 지휘했다. 1911년 10월 우창 봉기 때 지휘할 명망가가 필요했던 혁명파가 숨어 있던 그를 끌어내 후베이 군정부 도독으로 앉혔다. 1912년 난징 임시정부와 베이징 정부에서 부총통을 지냈고, 1913년 량치차오와 함께 진보당을 만들어 제2혁명 때 위안스카이 편에 섰다. 위안이 죽자 1916년 6월 대총통이 되어 임시약법과 국회를 되살렸으나 참전 문제로 돤치루이와 대립했고, 1917년 장쉰의 복벽 뒤 물러났다. 1922~1923년 다시 대총통을 지냈으나 차오쿤에게 밀려났다.

다른 이름: 여원홍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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