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기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이끌다 프랑코 정권에 총살된 카탈루냐 공화좌파의 지도자
노동운동과 가까운 변호사로 1920년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931년 카탈루냐 공화좌파(ERC) 창당에 참여하고 4월 바르셀로나 시청 발코니에서 공화국을 선포했다. 1934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이 되었으나 그해 10월 「카탈루냐국」을 선포했다가 30년형을 받았고, 1936년 인민전선 승리로 사면되어 복귀했다. 내전이 터지자 반파시스트 민병대 중앙위원회 결성을 주선했다. 1940년 프랑스에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스페인으로 넘겨졌고 몬주이크 성에서 총살되었다.
다른 이름: 류이스 콤파니스 이 조베르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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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23
스페인 국가기관하원의원 (사바델)
입법·국가 대표 -
1922–1931
법률·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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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1933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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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1940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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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940
스페인 공화파 국가기관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82.06.21레이다 근처 엘 타로스에서 태어났다.
- 1916카탈루냐 공화당 소속 바르셀로나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 1920.11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메노르카로 유배되었고, 옥중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 1922소작농 조합 「우니오 데 라바사이레스」를 함께 세웠다.
- 1931.03카탈루냐 공화좌파(ERC) 집행위원이 되었다.
- 1931.04.14바르셀로나 시청을 장악하고 발코니에서 공화국을 선포했다.
- 1932초대 카탈루냐 의회 의장이 되었다.
- 1934.01마시아의 뒤를 이어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 1934.10.06「스페인 연방공화국 안의 카탈루냐국」을 선포했다가 진압되어 30년형을 받았다.
- 1936.02인민전선 승리로 사면되어 자치정부 수반에 복귀했다.
- 1936.07.21반파시스트 민병대 중앙위원회 결성을 주선했다.
- 1936.12소련 영사의 압력 속에 POUM의 안드레우 닌을 자치정부 법무 장관에서 해임했다.
- 1939.02.05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
- 1940.08.13라 볼레팽에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스페인으로 넘겨졌다.
- 1940.10.15즉결 군사재판 뒤 몬주이크 성에서 총살되었다.
1936년 7월의 민병대 위원회와 1937년 5월 사건
1936년 7월 19일 바르셀로나에서 군부 봉기가 시작되자, 거리에서 반란군을 꺾은 것은 자치정부의 경찰보다 노동자 민병대와 정당들이었다. 7월 21일 싸움이 끝났을 때 실제 힘은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 CNT와 그 동맹인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AI), 반스탈린주의 공산당 POUM 같은 조직들의 손에 있었다. 콤파니스는 자치정부를 해체하지 않은 채 이 조직들을 한 지붕 아래 모으는 길을 택했고, 그가 주선한 반파시스트 민병대 중앙위원회가 그날 바로 결성되어 자치정부의 후원 아래 전쟁 수행과 질서 회복을 맡았다. 위원회에서 CNT를 대표해 전쟁부를 맡은 사람이 후안 가르시아 올리베르였다.
그러나 이 연합은 처음부터 위태로웠다. 1936년 11월에는 아나키스트와의 타협에 반발한 카탈루냐국(ERC에서 갈라진 독립파)의 일부가 그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적발되었다. 소련 영사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옵세옌코가 반스탈린주의 POUM과 계속 손잡으면 원조를 끊겠다고 위협하자, 콤파니스는 12월 POUM 지도자 안드레우 닌을 자치정부 법무 장관에서 해임했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공화파 진영끼리 시가전이 벌어진 뒤(5월 사건) 공공 치안은 중앙정부로 넘어갔고, 콤파니스는 항의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6월 16일 POUM은 불법화되었고 닌은 곧 행방불명되었다.
1939년 2월 그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 아들의 병 때문에 프랑스를 떠날 기회를 미루다 1940년 8월 게슈타포에 체포되었고, 스페인으로 넘겨져 마드리드 보안총국 지하에서 다섯 주 동안 독방 감금과 고문을 당했다. 10월 바르셀로나의 군사재판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10월 15일 새벽 몬주이크 성에서 그는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맨발로 총살대 앞에 서서 「카탈루냐를 위하여!」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