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공안부장이자 총참모장, 문화대혁명 전야에 린뱌오의 표적이 되어 실각한 인물
마오쩌둥은 "하늘이 무너져도 키 큰 뤄가 받쳐 준다"며 그를 최측근 경호 책임자로 신임했다. 1949년 초대 공안부장으로 10년간 공안 체계를 세웠고, 총참모장을 지내다 1965년 말 실각했다.
쓰촨 출신 황푸 6기생으로 홍군 정치·보위 부문에서 일했고 항일군정대학 교육장이었다. 1949년 초대 공안부장이 되어 반혁명 진압운동과 공안 체계를 세웠고, 1959년 펑더화이 실각 뒤 총참모장으로 군을 관리했다. 정치보다 훈련을 앞세운 그는 1965년 말 린뱌오의 고발로 「군권 탈취」를 꾀했다는 비판을 받아 실각했고, 1966년 자살을 기도해 다리를 다쳤다. 1977년 복권되어 군사위원회 비서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서독에서 수술 후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49–1959공안부장
- 1959–1965인민해방군 총참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