真理标准问题讨论 · 1978.05.11–12

진리 표준 토론 (1978)

Truth criterion debate (1978)

1978년 5월 11일 《광명일보》에 실린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에서 시작된 전국적 사상 논쟁. 이론은 사회적 실천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두 개의 모든」을 무너뜨렸고, 덩샤오핑이 화궈펑을 대신해 실권을 잡고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이 시작되는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상세

글은 난징대학 철학 교원 후푸밍이 1977년 9월 《광명일보》에 보낸 원고를 여러 사람이 고친 것으로, 중앙조직부장 후야오방의 심사를 거쳐 5월 10일 중앙당교 내부 간행물 《이론 동태》에 먼저 실렸다. 이튿날 《광명일보》가 「본보 특약 평론원」 이름으로 1면에 싣고 신화사가 전재했으며, 12일 《인민일보》와 《해방군보》, 13일 여러 성의 신문이 이어 실었다. 7천 자가 넘는 글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며 어떤 이론도 실천으로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궈펑은 북조선 방문 중이었다.

덩샤오핑은 6월 전군 정치공작회의에서 이를 지지했고 각 성과 군구의 지도자들이 잇달아 지지를 밝혔다. 토론은 11월 중앙공작회의에서 화궈펑의 자기비판과 12월 3중전회의 「실사구시」 노선으로 이어졌고, 민주와 인도주의를 내건 10년의 「신계몽」 운동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글은 2019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