两个凡是 · 1977.02.07–1978.12

두 개의 모든

Two Whatevers

1977년 2월 7일 《인민일보》·《홍기》·《해방군보》 공동 사설이 내건 「마오 주석이 내린 결정은 모두 단호히 지키고, 마오 주석의 지시는 모두 시종 변함없이 따른다」는 방침. 마오의 후계자 화궈펑의 정통성을 받치는 구호였으며, 1978년 진리 표준 토론과 11기 3중전회로 무너졌다. 「양개범시」라고도 한다.

상세

사설 「문건을 잘 학습하고 핵심 고리를 잡자」의 이 문장은 마오가 화궈펑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유훈을 앞세운 것이었고, 문화대혁명의 판정과 1976년 덩샤오핑의 실각도 그대로 둔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복권 전인 1977년 5월 24일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레닌도 스탈린도, 마오 자신도 「모든」이라는 교조를 내세운 적이 없으며, 마오쩌둥 사상은 체계 전체로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8년 5월의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 이 방침의 이론적 기초를 흔들었고, 6월 덩샤오핑은 전군 정치공작회의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생명 없는 교조」가 아니라고 말했다. 11기 3중전회에서 화궈펑은 「두 개의 모든」이 잘못이었다고 자기비판했다. 이를 지지한 왕둥싱·지덩쿠이·우더·천시롄은 「범시파」 또는 「작은 4인방」이라 불렸고, 1980년 2월 제5차 전체회의에서 모든 직무를 잃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