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国共产党第十一届中央委员会第三次全体会议 · 1978.12.18–22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 (1978)

Third Plenum of the 11th Central Committee (1978)

1978년 12월 18~22일 베이징 징시 빈관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계급투쟁을 중심 고리로」를 버리고 당의 중심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옮겨 개혁개방의 출발점으로 꼽히며, 덩샤오핑이 화궈펑을 대신해 실권을 잡은 회의로 여겨진다.

상세

전체회의에 앞서 11월 10일부터 열린 중앙공작회의에서 천윈이 보이보 등 「61인 반도」 사건, 펑더화이·타오주 문제, 1976년 톈안먼 사건, 캉성의 오류 같은 「여섯 가지 문제」를 제기했고, 덩샤오핑은 12월 13일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하며 일치단결해 앞을 보자」는 연설로 회의의 기조를 정했다. 전체회의 공보는 “대규모의 격렬한 대중적 계급투쟁은 이미 기본적으로 끝났다”고 선언하고 4개 현대화를 당의 중심 과제로 삼았다.

회의는 마오에 대한 공개 결의를 내지 않았지만, 지도자의 개인 의견을 「지시」라 부르지 말라고 하고 「마오 주석」「화 주석」이라는 호칭을 피해 개인숭배에 제동을 걸었다. 「우경 번안풍 반격」을 부정하고 펑더화이·타오주·보이보·양상쿤을 복권했으며 1976년 톈안먼 사건을 재평가했다. 인사 개편은 크지 않았으나 천윈이 정치국 상무위원·부주석·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1서기가 되었고 덩잉차오·후야오방·왕전이 정치국원, 황커청 등 9명이 중앙위원으로 보선되었다. 농업에서는 생산을 작업조에 맡기는 것까지만 허용했다. 문화대혁명의 전면 부정은 1981년 제6차 전체회의의 「역사결의」로 미뤄졌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