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톈안먼 사건 (1976)
April Fifth Tiananmen incident (1976)
1976년 4월 청명절 무렵 저우언라이를 추모하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모인 군중이 4인방과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다 진압된 사건. 「4·5 운동」이라고도 한다. 당국은 이를 「반혁명 사건」으로 규정하고 덩샤오핑을 배후로 몰아 모든 직무에서 해임했으나, 1978년 12월 제11기 3중전회가 「혁명적 사건」으로 판정을 뒤집었다.
상세
1976년 1월 8일 저우언라이가 죽자 당국은 공개 추모를 제한했고, 3월 25일 상하이 《문회보》가 그를 「당내 주자파」로 빗대는 글을 싣자 3월 말 난징에서 항의가 일어났다. 4월 4일 인민영웅기념비 아래 화환과 시와 플래카드가 쌓였고, 이날 최대 200만 명이 광장을 찾았다. 시들은 장칭·장춘차오·야오원위안을 공격했고 일부는 마오와 문화대혁명까지 겨냥했다. 그날 밤 정치국은 이를 반혁명으로 규정하고 밤사이 화환을 치웠다.
5일 아침 이를 안 군중은 경찰차를 불태우고 주변 건물로 밀려 들어갔고, 밤에 민병과 경찰이 곤봉과 혁대로 광장을 비우며 사람들을 체포했다. 정저우·쿤밍·타이위안·창춘·상하이·우한·광저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4월 7일 덩샤오핑은 당 안팎의 모든 직무를 잃었고 화궈펑이 제1부주석 겸 총리가 되었다. 추모 시들은 뒤에 비공식 시집으로 묶였고, 1978년 12월의 재평가는 덩샤오핑의 복귀와 함께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