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자하로비치 마누일스키

Дмитрий Захарович Мануильский
소련 우크라이나 1883–1959 ○ 자연사

스탈린 시대 코민테른의 실무 관리자

1939년 스탈린이 디미트로프에게 한 말: "마누일스키는 아첨꾼이야! 트로츠키주의자였지!" - 트로츠키와의 과거 인연에도 불구하고 대숙청을 생존한 몇 안 되는 구볼셰비키 중 한 사람이었다.

볼린 지방 성직자 가문 출신 볼셰비키로, 1905년 크론슈타트·스베아보르크 수병 봉기를 조직했다.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코민테른 서기로서 각국 공산당의 노선 전환과 숙청을 집행하며 스탈린의 세계 공산주의 운동 통제를 실무 관장했다. 1944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으로 전환되어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유엔 헌장 전문과 '목적과 원칙' 장의 초안 작성을 주재하는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유엔 창설과 우크라이나 외교 (1945–1952)

1944년 7월 마누일스키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인민위원회 부의장 겸 외무인민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얄타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가 소련과 별도로 유엔 창립 회원국 자격을 얻으면서, 마누일스키는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 국제기구 회의에 우크라이나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는 유엔 헌장의 전문(前文)과 제1장 「목적과 원칙」 초안을 작성한 제1위원회 의장을 맡아 조직의 기본 방향을 정립하는 데 직접 관여했다. 위원회 토론에서 그는 참가국 간 '목적'에 대한 큰 의견 차이가 있음을 솔직히 지적했다. 회의 기간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핵심 쟁점에서는 소련 대표단을 전폭 지지했지만, 부차적 사안에서는 독자적 입장을 취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미국 측이 제안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라는 명칭을 지지하여 미국 대표단으로부터 공개 감사를 받기도 했다. 마누일스키는 흐루쇼프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이러한 독자 행보가 다른 참가국들의 관심과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만족스럽게 기록했다. 이후 1952년까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으로서 유엔 총회 첫 4차 회기에 참석했으며, 냉전 초기 소련 진영의 대표적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코민테른에서 각국 공산당을 지휘하던 인물이 국제기구의 헌장을 기초하는 아이러니는 그의 경력 중 가장 극적인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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