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업무서기, 마지막 구술의 기록자
1963년, 72세의 볼로디체바는 유리 카랴킨에게 말했다: "레닌 동지를 해독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고, 스탈린 동지는 아주 쉬웠습니다…"
레닌의 업무서기(1918~1924)로, 1922년 12월 30~31일 「민족 문제 또는 자치화에 관하여」를 포함한 마지막 구술들을 받아썼다. 1923년 3월 5일 레닌이 트로츠키에게 그루지야 사건 방어를 요청한 편지를 받아쓰고 전달했으며, 유언 초기 필사본을 스탈린의 명령으로 폐기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7VII(4월) 전러시아 당대회 서기국 근무, VI 당대회 속기사
- 1917.11–1918.07인민위원회의(Sovnarkom) 출판국 서기
- 1918–1924인민위원회의 및 노동국방회의(STO) 타자수·속기사, 서기 보좌관
- 1922.12–1923.03레닌의 마지막 논문·편지 구술을 받아씀: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 「민족 문제 또는 자치화에 관하여」 등
- 1924–1928V.I. 레닌 연구소(후일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 연구원
관련 역사 사건
레닌의 마지막 구술을 받아쓰다
볼로디체바는 레닌의 마지막 구술을 받아쓴 핵심 기록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료적 가치는 1922년 11월 21일부터 1923년 3월 6일까지 레닌의 활동을 서기들이 날마다 남긴 『당직 서기 일지』(레닌 전집 제45권 수록)에 여럿 남긴 그녀 자신의 1인칭 기록이다. 이 일지는 레닌의 병상에서의 노동을 거의 시간 단위로 보존한 유일무이한 증언으로, 그 정밀함은 볼로디체바 같은 속기사들이 한 자 한 자 기록한 덕분이었다.
가장 유명한 대목은 1922년 12월 23일이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밤 9시 무렵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저택으로 불렀다. 넉 달 동안 구술을 받아썼다. 몸 상태가 나빴다. 의사들이 와 있었다. 구술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말했다: '당대회에 보내는 편지를 구술해 드리리다. 받아쓰시오!'" 이 구술이 이른바 '유언'으로 불린 편지로, 스탈린을 비롯한 지도부들에 대한 평가를 담았다. 이튿날인 24일 레닌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내용이 '절대 비밀'임을 거듭 강조했고, 구술본을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책임 아래 보관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일지에는 그녀가 받아쓴 나머지 저작들이 이어진다. 1923년 1월 17일 「우리 혁명에 대하여」를 구술하던 레닌이 "우리의 수하노프들…"이라던 구절에서 문득 멈춰 "참 기억력이!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까맣게 잊었군! 제기랄! 놀라운 건망증이야!"라고 농담 섞인 한탄을 내뱉은 장면, 2월 6일 자신은 받아쓰는 것보다 직접 쓰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라며 1918년 초고를 아예 태워 버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직접 쓴 일화를 '전염되는 웃음'으로 들려준 장면까지 그녀의 손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기록은 1923년 3월 5~6일에 몰려 있다. 트로츠키에게 그루지야 사건 방어를 맡아 달라는 편지와 스탈린에게 서신을 받아썼고, 스탈린 앞으로의 편지는 크룹스카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7일 결국 전달했다. 이로써 볼로디체바는 레닌의 마지막 정치적 의사가 담긴 문서들의 최초 필사자이자, 그 운명을 끝까지 지킨 증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