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드미트리예비치 마슬류코프

Юрий Дмитриевич Маслюк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타지키스탄 1937–2010 ↓ 해임 1991 · 병사

소련 말기의 마지막 고스플란 세대

1998년 금융위기 속에서 옐친이 그에게 총리직을 제안했지만, 마슬류코프는 거절했다. "나는 프리마코프의 제1부총리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소련 계획경제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그는 권력 자체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다.

타지키스탄 레니나바드 출신의 엔지니어로, 이젭스크 방산 공장에서 출발해 소련 군수산업의 핵심 기술관료로 성장했다. 1988년 고스플란 의장과 정치국 위원(1989)을 지낸 마지막 계획경제 책임자였으며, 소련 붕괴 후에는 프리마코프 내각 제1부총리(1998~1999)로 금융위기를 수습했다. 이후 공산당 두마 의원으로 2010년 사망할 때까지 활동한, 소련 계획관료 세대와 탈소비에트 산업정치를 잇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소련 정치국

1990.07 미재선

관련 역사 사건

군수공업위원회 의장: 소련 방위산업의 마지막 총괄자

1985년, 마슬류코프는 소비에트연방 각료회의 부의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군수공업위원회(ВПК) 의장을 맡았다. 군수공업위원회는 9개 방위산업성과 수천 개 기업을 총괄하는 소련 군수경제의 최고사령탑이었다. 1988년 고스플란 의장과 각료회의 제1부의장으로 승진한 뒤에도 군수공업위원회 의장직을 그대로 겸임하여, 소련 GDP의 4분의 1까지 소비하던 군수 부문 전체를 한 사람이 지휘하는 유례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1986년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습에도 참여했다. 1991년 1월 각료회의가 내각으로 개편된 뒤에도 군수공업국가위원회 의장으로 남아, 같은 해 11월 대통령령으로 해임될 때까지 군수 부문 지휘를 놓지 않았다.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인 1992년에는 '국방연구소'를 직접 설립해 1995년까지 이끌며, 체제 전환 속에서도 군수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갔다.

러시아에서 이어진 산업정치

소련 해체 뒤 마슬류코프는 계획경제의 관리 경험을 러시아의 산업 회복 문제에 연결했다. 1992년 국방연구소를 세워 1995년까지 이끌었고, 국가두마에 진출한 뒤에는 산업정책과 고도기술 부문을 담당하는 위원회에서 생산 기반과 국가 조달의 재건을 주장했다. 1998년 금융위기 때 프리마코프 내각의 제1부총리가 된 그는 산업·금융 정책을 조정하며 국가의 개입 능력을 회복하려 했다. 이 경로는 시장 전환을 거부한 인물이라는 단순한 도식보다, 군수산업과 계획기관에서 형성된 전문성이 붕괴 뒤에도 산업국가의 재구성을 위한 정치적 자원으로 사용된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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