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시 라코시

Rákosi Mátyás
헝가리 헝가리 1892–1971 ○ 망명지 사망

헝가리 스탈린화의 설계자, '살라미 전술'로 일당독재를 구축

1940년 11월 6일, 16년의 호르티 감옥 생활을 마치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라코시는 바로 다음날 붉은광장 혁명기념일 열병식에서 레닌 묘단 위 스탈린의 곁에 섰다.

헝가리 공산당과 노동자당 최고 지도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과 함께 귀국해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1919년 쿤 벨러의 평의회 공화국에서 활약한 후 코민테른 서기를 지냈고, 호르티 정권 아래 16년간 투옥되었다. 1945년 귀국 후 '살라미 전술'로 경쟁 세력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며 일당 지배를 완성했다. 1952년 총리를 겸해 중공업화집단화를 추진했으나,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압력으로 1956년 7월 해임되었고 혁명 후 소련에서 여생을 보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살라미 전술'과 일당 독재의 구축 (1945–1949)

라코시의 권력 장악 방식은 그 스스로 '살라미 전술(szalámitaktika)'이라 명명한 단계적 제거 전략으로 요약된다. 1945년 총선에서 소상공당이 57%를 득표하자, 라코시의 공산당은 '얇게 썰 듯' 연립정부 내 파트너들을 하나씩 분쇄해 나갔다. 먼저 좌파 블록을 결성해 소상공당을 분열시키고, 이어 1947년 새 선거법으로 약 50만 명(유권자의 8.5%)의 선거권을 박탈했다. 그해 총선에서 공산당은 22.25%로 원내 1당이 되었고, 13.4%를 득표한 헝가리 독립당은 선거 사기 혐의로 금지되었다. 1948년 6월 사회민주당을 강제 합병해 헝가리 노동자당(MDP)을 출범시켰으며, 1949년 5월 단일 명부 선거에서 97%를 득표해 공식적인 일당 지배를 완성했다.

이 과정의 정점은 1949년 라슬로 라이크(László Rajk) 내무장관에 대한 공개 재판이었다. 라이크는 라코시의 잠재적 경쟁자였으며, 반파시스트 투쟁 경력이 뛰어난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티토주의'와 '시온주의 음모'라는 조작된 혐의로 체포되어 1949년 9월 극적인 쇼 재판 끝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재판은 동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숙청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라코시는 이를 통해 당내 불복종을 원천 봉쇄했다. 스탈린은 라코시를 '최고의 헝가리 제자'라 불렀고, 헝가리는 소비에트화의 모범 사례로 간주되었다. 라코시의 살라미 전술은 이후 동유럽 여타 국가에서도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표준적 방법론으로 참조되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