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부사령관에서 통합 반대파로 전락한 군사 지도자
1917년 10월 24일 밤, 라셰비치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서 순양함 아브로라 호에 명령을 내려 전날 사관생도들이 끊어 놓은 니콜라예프스키 다리를 복구하게 했다 — 봉기의 동맥을 다시 연 순간이었다.
오데사 출신의 볼셰비키 군사 지도자.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두 번 부상당한 뒤 1917년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에서 10월 봉기를 지휘했다. 내전기 제3군 사령관과 동부·남부 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으로 활약했고, 1925년 적군 제1부사령관 겸 전쟁·해군 부인민위원에 올랐다. 1926년 지노비예프의 통합 반대파에 가담해 모스크바 근교 숲에서 불법 반대파 집회를 열었다가 중앙위원회 후보위원과 부사령관 직에서 해임되었고, 1927년 출당 후 하얼빈에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01–15RSDLP 입당, 오데사·니콜라예프·예카테리노슬라프·페테르부르크에서 당 활동, 반복적 체포와 유배
- 1915–17제1차 세계대전 징집, 두 번 부상, 공로로 상급 하사관 진급
- 1917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볼셰비키 분파 서기·의장,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10월 봉기 지휘
- 1918–20제3군 사령관, 동부·남부·서부 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제7군 사령관 대행
- 1922–25시베리아 혁명위원회 의장, 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
- 1925–26소련 혁명군사평의회 부의장 겸 전쟁·해군 제1부인민위원
- 1926–27통합 반대파 가담, 불법 집회 조직, 중앙위 후보위원 해임, 15차 당대회 출당
- 1928반대파 철회 선언, 당적 회복, 하얼빈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1926년 숲속 불법 집회 — 통합 반대파의 분수령
1926년 6월 6일, 라셰비치는 모스크바 근교 돌고프루드나야 역 부근 숲에서 통합 반대파 지지자들의 비밀 집회를 조직하고 기조 보고를 맡았다. 1921년 제10차 당대회에서 당내 분파 활동이 금지된 이래, 반대파가 당 기구의 통제 밖에서 독자적인 집회를 연 것은 이례적인 도전이었다. 라셰비치는 이 자리에서 중앙위원회 지도부의 노선을 비판하는 보고를 했고, 참석자들은 당의 관료화와 네프 아래 사회적 분화에 대한 우려를 논의했다.
스탈린파는 이 집회를 '반당 분파 활동'의 결정적 증거로 삼았다. 1926년 7월 중앙위원회-중앙통제위원회 합동 전원회의는 '당의 통일에 관하여' 결의 제7조(분파 활동 중앙위원 축출 조항)를 사상 처음으로 발동해 라셰비치를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서 제명하고 혁명군사평의회 부의장 직에서 해임했으며, 2년간 책임 있는 당직을 맡지 못하도록 했다. 지노비예프 역시 정치국에서 축출되었다. 이 사건은 통합 반대파에 대한 전면적 탄압의 신호탄이 되었고, 이후 1년 반 동안 지속된 공개적·행정적 숙청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