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성 추진제 로켓으로 전략로켓군의 척추를 만든 설계자
1960년 10월 24일, R-16 시험발사대에서 126명이 폭사한 네델린 참사 당시, 얀겔은 잠시 흡연실로 자리를 옮겨 목숨을 건졌다. 훗날 그는 '운명이 나를 살렸다'고 짧게 말했다.
이르쿠츠크 변경 유형수 가문 출신으로, 모스크바 항공대학 졸업 후 전투기 설계를 거쳐 1954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OKB-586(유즈노예)의 수석설계자가 되었다. 저장성 고비등 추진제를 채택한 R-12·R-14·R-16·R-36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차례로 완성해 소련 전략로켓군의 핵심 전력을 구축했으며, 코스모스·치클론 발사체로 우주계획의 실용적 기반도 닦았다. 1960년 네델린 참사 당시 흡연실로 자리를 옮겨 생존했고, 1971년 60세 생일 축하연 무대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37모스크바 항공대학(MAI) 졸업, 폴리카르포프 설계국 입사
- 1937–44전투기 I-153, I-180, I-185 개발; 미코얀·먀시셰프 설계국 근무
- 1946–48항공공업부에서 항공기 개발 조정
- 1950–54NII-88에서 코롤료프 부하; R-5·R-7·R-11·R-12 초기 연구
- 1954–71OKB-586(유즈노예) 수석설계자; 저장성 추진제 로켓 개발
- 1959/61R-12·R-14·R-16 배치, 두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 1960네델린 참사(R-16 폭발)에서 흡연실로 피해 생존
- 197160세 생일 축하연 무대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저장성 추진제와 자율유도: 전략로켓군의 척추
얀겔의 가장 결정적인 기술적 선택은 고비등(저장성) 추진제와 자율관성유도 체계였다. 코롤료프가 액체산소 같은 극저온 산화제를 고집해 발사 직전까지 연료를 주입해야 했던 반면, 얀겔은 상온에서 저장 가능한 비대칭디메틸히드라진(UDMH)과 사산화이질소 같은 독성 추진제를 채택했다. 이 체계는 취급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사일로에 장기간 연료를 주입한 상태로 대기할 수 있어 실질적인 핵억지력을 제공했다. 자율관성유도는 지상무선국 없이도 표적을 향해 독립 비행할 수 있게 해, 전쟁 초기에 지상 기지가 파괴돼도 보복 타격이 가능했다. R-12, R-14, R-16, R-36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은 마침내 소련 전략로켓군의 주력 전력이 되었다. 군부는 이 차이를 '코롤료프는 타스 통신을 위해 일하고, 첼로메이는 변기에나 빠지고, 얀겔은 우리를 위해 일한다'는 말로 요약했다. 얀겔이 닦은 저장성 추진제 기술은 후일 R-36M(사탄)과 제니트 발사체로 계승되어 냉전 종식 이후까지 소련·러시아 전략 미사일 전력의 근간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