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자파르 아바소비치 바기로프

Мир Аббасович Джафар Багиров
소련 아제르바이잔 1895–1956 ✕ 처형

아제르바이잔의 20년 통치자, 스탈린의 캅카스 대리인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한 말: "내가 국민 앞에 지은 죄는 너무 커서, 총살도 교수형도 부족하다. 나는 사지를 찢겨 조각조각 갈기갈기 찢겨야 한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1933~1953)로 20년간 스탈린 시대 공화국을 통치했다. 대숙청을 지휘하는 한편 공업화와 바쿠 개발을 주도했으며, 베리야 실각 직후 몰락해 1956년 총살형에 처해졌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아제르바이잔 대숙청의 지휘자

바기로프가 1933년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로 임명된 것은 스탈린이 공화국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집행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전임 체카 의장 출신인 그는 베리야와 '샴쌍둥이'로 불릴 만큼 밀접한 관계였으며, 이 인맥을 바탕으로 20년간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했다.

1937년 2~3월 모스크바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스탈린이 대숙청의 신호를 보낸 직후, 바기로프는 3월 19일 아제르바이잔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소집해 "당 지도부 전체를 파괴하겠다"는 공개 위협으로 화답했다. 그는 "국경 공화국, 다민족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모든 의심스러운 자를 당의 적, 배신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숙청을 전방위로 확대했다.

1937년 6월 제13차 아제르바이잔 당 대회에서 바기로프는 연단에서 직접 시인 후세인 자비드, 미카일 무슈피그, 아흐메드 자바드를 향해 "쓰레기!"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술탄 메지드 에펜디예프에게는 "꺼져라!"라고 외쳤다. 이 대회는 아제르바이잔 지식인과 당 간부에 대한 대량 체포의 분수령이 되었다.

바기로프 치하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이웃한 남캅카스 공화국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숙청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의 개인적 잔혹성은, 1930년 차이 오바스 집단 학살에서 보여준 것처럼, 모스크바조차 우려할 정도였다. 그는 개인적 원한과 정치적 경쟁을 숙청에 활용했으며, 루훌라 아훈도프 같은 경쟁자는 바기로프의 직접 지시로 체포·처형되었다. 바기로프는 스탈린에게 직접 '의심스러운' 간부 명단을 보고하며 체포 승인을 요청했고, 공화국의 과학·문화·당 엘리트 전체를 조직적으로 와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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