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세이 일리치 프룸킨

Моисей Ильич Фрумк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78–1938 ✕ 처형

'시골이 우리를 등졌다', 당에 직언한 재정 부인민위원

'시골은 소수의 빈농을 제외하고 우리를 반대하고 있다.' 1928년 6월 15일, 재정 부인민위원 프룸킨이 정치국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이 한 문장이 우편향 탄압의 신호탄이 되었다.

1898년 분트를 거쳐 볼셰비키에 합류한 구파 혁명가로, 내전기 식량인민위원부에서 일하고 네프기에는 대외무역·재정 부인민위원을 지냈다. 1928년 6월, 곡물 조달을 위한 강제 조치가 한창이던 때 정치국에 보낸 편지에서 '시골은 소수의 빈농을 제외하고 우리를 반대하고 있다'고 쓰며 스탈린의 농촌 정책이 노농동맹을 파탄내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 한 통의 편지로 당내 '우편향' 제1호 피의자가 되었다.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되었고 1956년 사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28년, '우편향'의 원형이 되다

1928년 6월 15일자 프룸킨의 편지는 곡물 조달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제출되었다. 그에게는 곡물 조달의 중앙 문서 문제였고, 동시에 당이 1월 이후 동원한 비상조치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프룸킨은 정치국에 보낸 편지에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 제15차 당대회 이후의 농촌 정책을 문제 삼았고, '시골은 소수의 빈농을 제외하고 우리를 반대하고 있다'고 썼다. 그가 중농과의 동맹이 파탄나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것은 이후 문헌이 정리한 바다.

이 편지는 정치국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스탈린은 '정치국 위원들에게' 보내는 답변을 작성해 같은 편지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여기서 중농 대중이 '전망 없는 상태'로 몰렸다는 진단, '제14차 대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구, 콜호즈와 소프호즈 확대에 대한 유보, 농촌에서의 과잉 조치 비판을 차례로 논박했다. 이어 6월 25일에는 몰로토프가 '모든 정치국 위원과 후보 위원들에게' 보내는 답변에서 스탈린의 답변에 동의하면서 프룸킨의 진단을 다시 반박했다. 두 답변이 정치국 전체에 회람되면서 프룸킨의 편지는 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다루는 문서가 되었다. 프룸킨은 소련 지도부 안에서 '우편향'으로 공식 비판된 첫 인물로 지목되었다.

프룸킨의 비판은 곡물 조달의 비상조치 자체를 겨냥했다. 징발과 시장 폐쇄, 쿨라크에 대한 행정적 압박이 여기에 속했고, 프룸킨은 강제 조치가 중농과의 동맹을 훼손한다고 보았다. 반대편은 이 조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노동계급과 농민의 동맹을 지키는 길이라고 주장했고, 프룸킨의 진단은 파국적 위기를 주장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이 대립은 1928년 7월 전원회의의 결의와 11월 전원회의로 이어졌다.

1928년 11월 전원회의에서 스탈린은 프룸킨의 6월 첫 편지와 11월 두 번째 편지를 함께 읽으면서 그를 '우편향'의 첫 자리에 놓고, 두 편지를 '우편향'을 설명하는 표준 문헌으로 삼았다. 이로써 1928년은 프룸킨 개인의 당내 비판의 해가 아니라, 반대파에 대한 조직적 탄압으로 이어질 '우편향'이라는 범주가 당 안에서 정식화된 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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