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디온 니콜라예비치 나다라야

Сардион Николаевич Надарая
소련 그루지야 1903–1982 ○ 십 년형 복역 뒤 자연사

베리야의 경호를 맡은 내부감옥 책임자

1937년, 나다라야는 전 그루지야 중앙위원회 서기 삼손 마물리야를 심문 탁자에 묶어 일주일 넘게 구타한 끝에 오르조니키제에 대한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1955년 재판에서 스스로 실토한 내용이다.

그루지야 서부 세피에티 마을 출신으로, 1937년 대숙청 정점에서 그루지야 NKVD 내부감옥을 운영하며 수감자 구타와 허위 사망진단서 작성에 관여했다. 1939년 베리야의 개인 경호 부책임자가 되어 모스크바로 올라갔고, 1953년 경호 책임자에 올랐다. 베리야 몰락 후 체포되어 1955년 트빌리시 공개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여섯 고위 피고와 달리 처형을 면했다. 1965년 모르도바 수용소에서 석방되었고 198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5년 트빌리시 재판

1955년 9월 7일부터 19일까지 트빌리시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서 나다라야는 그루지야 NKVD의 전직 고위 간부 7명(압센티 라파바, 니콜라이 루하제, 샬바 체레텔리, 콘스탄틴 사비츠키, 니키타 크리먄, 알렉산드르 하잔, 게오르기 파라모노프)과 함께 피고석에 섰다. 기소는 RSFSR 형법 제58-1조 '나'항(조국 반역), 제58-8조(테러), 제58-11조(반혁명 조직 활동)에 근거했다. 이 재판은 1953년 12월 베리야 처형 이후 스탈린 시대 국가폭력에 대한 소련 최초의 본격적 공개 재판 중 하나였다.

기소장에서 나다라야는 내부감옥 책임자로서 수감자들을 '밧줄, 곤봉, 고무 곤봉'으로 조직적으로 구타하고, '뜨거운 방'과 '차가운 방'이라 불리는 고문실을 운영했으며, 구타로 사망한 수감자들의 사인을 '심장 질환'으로 허위 기재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에서 나다라야는 전 그루지야 중앙위원회 서기 삼손 마물리야를 심문 탁자에 묶어 일주일 넘게 구타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피고 8명 중 라파바, 루하제, 체레텔리, 사비츠키, 크리먄, 하잔 등 6명은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다. 나다라야와 파라모노프는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나다라야가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협조하고 베리야 경호 책임자로서 모스크바에서의 활동이 트빌리시 내부감옥에서의 직접적 고문 행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하게 평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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