녜룽전

聂荣臻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 마오주의 중국 중국 1899.12.29.–1992.5.14. ○ 자연사

진차지 근거지의 사령관에서 「양탄일성」 핵·미사일 계획의 총책임자가 된 원수

1958년부터 국방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중국 핵 계획을 지휘했고, ‘제국주의의 핵 공격을 받을 때 최소한의 보복 수단을 갖추기 위해’ 첨단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쓰촨 출신으로 프랑스·벨기에·소련에서 배우고 황푸군관학교 정치교관을 지냈다. 대장정에서 린뱌오의 제1군단 정치위원이었고 항일전쟁기 화베이의 진차지 근거지를 세워 지휘했다. 국공내전 뒤 베이징 시장을 지냈고 1955년 원수가 되었다. 1956년부터 국무원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로 소련 원조 철수 뒤에도 1964년 원자폭탄, 1967년 수소폭탄, 1970년 인공위성 발사에 이르는 국방과학 계획을 총괄했다. 10대 원수 중 마지막으로 1992년 사망했다.

다른 이름: 섭영진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61년 과학 14개 조 초안 작성

1958년부터 국방과학기술위원회를 이끌면서도 녜룽전은 과학 연구 전반의 운영 규범을 정비하는 일을 함께 맡았다. 1961년 그는 「과학 14개 조」 초안 작성을 주관했는데, 이 문건은 지식인을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당원이 비당원 과학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연구자에게 연구 업무를 위한 시간을 6분의 5로 확보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약진 운동 이후 지식인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강화되던 시기에 나온 것으로, 과학기술 인력의 전문 연구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 한 조치였다. 녜룽전 자신이 국방 분야의 대형 기술 과업을 지휘하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전문성의 조건을 규범 문서로 못박으려 한 이 작업은 이후 핵·미사일 개발을 지탱한 조직적 토대와 연결된다. 다만 「과학 14개 조」의 실제 집행 범위와 문화대혁명기에 이 규범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제공된 사료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