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군 장군이 된 비밀 협력자
1937년 밀러를 만나게 한 뒤, 스코블린은 파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니콜라이 스코블린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내전에서 싸운 백군 장교로, 코르닐로프 타격사단을 이끈 젊은 소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망명 뒤 그는 러시아 전군사연합의 핵심 인물이 되었지만, 소련 정보기관의 협력자로 포섭되어 백계 러시아인 망명 공동체 내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투하쳅스키 사건을 둘러싼 독일 측 문서와 정보가 스탈린의 숙청을 촉발했는지, 아니면 스탈린의 주도 아래 조작·활용되었는지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다. 1937년 예브게니 밀러 납치에 관여한 뒤 사라졌으며, 그의 최후는 확정되지 않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군 장교
- 1917–1918코르닐로프 타격부대 대대장
- 1918–1920코르닐로프 타격연대·사단 지휘관, 백군 소장
- 1920–1929갈리폴리·불가리아 망명, 코르닐로프 연대 지휘
- 1929–1937파리 러시아 전군사연합 코르닐로프 연대장
- 1935–1937ROVS 내부선 방첩 책임자
- 1937밀러 납치 작전 협력 뒤 실종
관련 역사 사건
이중 역할: 소련 정보기관 협력자 '농부'
스코블린이 백군 장군에서 소련 정보기관의 비밀 협력자로 전환한 시점과 경위는 확정되지 않았다. 영어권 서술은 1930년 9월 파리에서 옛 연대 동료의 포섭으로 그와 아내 나데즈다 플레비츠카야가 OGPU에 협력하게 되었고 암호명 '농부'를 받았다고 전한다. 러시아어 서술은 시점을 1930년 또는 1931년으로 두고, 포섭자를 옛 동료이자 GPU 요원이던 표트르 코발스키로 지목하며, 이 이야기가 문서적 뒷받침이 없다고 스스로 밝힌 작가 다마스킨의 서술에 기대고 있음을 함께 적는다. 협력의 대가로 스코블린은 망명 군사 조직 내부에서 정보를 제공했고, 동시에 러시아 전군사연합(ROVS) 내 지위를 높여 1935년에는 방첩 조직 '내부선'을 이끌었다.
그의 이중 역할은 망명 공동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서방의 일부 서술은 그가 알렉산드르 쿠테포프 납치에도 가담했다고 보지만, 러시아어 서술은 쿠테포프 납치가 야코프 세레브랸스키 지휘 아래의 요원들이 수행한 것으로 그를 직접 연결하지 않는다. 밀러 납치 이후인 1937년 11월, 스코블린은 볼셰보의 감독 거주지에서 자신의 NKVD 상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9월 22일 이전에 있던 그 분열이 이제 없다'며 소련에 완전히 속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이 문서는 그가 파리 탈출 뒤에도 소련 측 통제 아래 있었음을 보여 준다. 플레비츠카야는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밀러 납치 공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40년 렌 감옥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