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크 세묘노비치 셰닌

Олег Семёнович Шенин
소련 러시아 1937–2009 ○ 자연사

소련을 지키려다 감옥으로 간 마지막 정치국

GKChP 위원들은 가장 큰 실수를 했다. 'A'라고 말하고서 'B'와 나머지 알파벳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소련 말기 당 조직·인사 업무를 총괄한 정치국원 겸 중앙위 서기로, 실질적으로 고르바초프와 이바시코에 이은 당내 3인자였다. 1987년부터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당 제1서기를 지내며 시베리아 공업지대를 관리했고, 1990년 정치국에 진입해 페레스트로이카 후반기 당 기구의 보수적 반격을 주도했다. 1991년 8월 쿠데타에서 GKChP에 가담해 바클라노프·볼딘·바렌니코프와 함께 포로스의 고르바초프를 찾아간 4인 중 한 명이었으며, 실패 후 1년 이상 수감되었다가 1994년 사면되었다. 소련 해체 후에도 공산당연합(СКП-КПСС) 의장과 재건 КПСС 의장을 맡으며 소비에트 체제 복원을 위한 통일공산당 운동을 이끌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소련 해체 뒤의 재건 공산주의

셰닌의 정치적 의미는 1991년 8월의 실패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소련 해체를 불가피한 종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연방 차원의 공산주의 조직과 국가적 통합을 다시 세우려 한 정치인이었다. 1993년 재판이 진행 중이던 때 창립 의장으로 선출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공산당 연합(СКП-КПСС)은 해체된 소련의 공산당들을 하나의 조정 틀 안에 묶으려는 시도였다. 셰닌은 이 조직을 이끌며 공산주의 운동의 국제적·연방적 연계를 유지하려 했고, 1997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났다.

이 노선은 러시아 공산당의 선거정당화와 긴장 관계를 이루었다. 2000년 셰닌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통합 공산당을 만들자는 구상을 둘러싸고 겐나디 주가노프와 결별했으며, 당 지도부가 사회주의의 이념적 기준에서 물러났다고 비판했다. 2001년에는 СКП-КПСС가 분열했고, 셰닌을 지지한 세력은 2004년 스스로를 КПСС로 재편했다. 이 조직은 소련 체제의 복원을 실제 국가 권력으로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셰닌이 후기 소비에트 정치의 조직 경험을 해체 이후의 공산주의 재건 프로젝트로 옮겨 간 경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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