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렉산드르 야코블레비치 슘스키

Александр Яковлевич Шумский
소련 우크라이나 1890–1946 ✕ 살해

우크라이나 민족공산주의의 선구자, '슘스키즘'의 원형

1926년 4월, 슘스키는 스탈린과 두 시간 독대하며 카가노비치 교체와 우크라이나화 가속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정치국 서한으로 '슘스키즘'을 민족주의적 일탈로 규탄, 우크라이나 민족공산주의 탄압의 분수령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민족공산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모스크바 중앙집권에 맞서 공화국의 자율성을 주장한 '슘스키즘'의 원형. 보로트비스트에서 CP(b)U 정치국원으로 합류한 그는 교육인민위원(1924~1927) 시절 도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탈러시아화, 우크라이나인 간부 등용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1926년 스탈린과 정면 충돌하여 '민족주의적 일탈'로 규탄받고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었으며, 이후 그의 이름은 우크라이나 자율성 탄압의 대명사가 되었다. 1933년 체포되어 솔로프키 수용소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유형을 거쳐 1946년 석방 직후 NKVD에 암살, 1958년 복권.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보로트비스트에서 볼셰비키로: 초기 정치 형성과 1920년 합병

슘스키의 정치적 뿌리는 러시아 볼셰비키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토착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1908년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 '스필카'(Spilka)에 입당한 그는, 1917년 2월 혁명 후 우크라이나 사회혁명당(UPSR) 좌파의 핵심 지도자로 부상했다. 1918년 5월 제4차 UPSR 대회에서 좌파 분파를 이끌어 '보로트비스트'(Borotbist, 당 기관지 『보로트바』에서 유래)를 결성했고, 같은 해 가을 헤트만 정부에 대항한 민중봉기에 참여했다.

보로트비스트는 우크라이나 민족해방과 소비에트 권력을 동시에 추구한 독자적 정당이었다. 이들은 러시아 볼셰비키의 중앙집권에 맞서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주권을, 동시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반소비에트 노선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했다. 1919년 1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총재부(Directory)에 대항해 드니프로 좌안에서 봉기를 조직한 세력도 바로 이들이었다.

1920년 2월, 코민테른은 보로트비스트에게 당을 해산하고 CP(b)U에 합류하라는 특별 결정을 내렸다. 슘스키는 이 합병의 핵심 협상가였고, 합병 직후 CP(b)U 정치국·조직국 위원이자 코민테른 집행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단순한 조직 통합이 아니었다: 보로트비스트 인사들의 유입으로 CP(b)U 내에 우크라이나 민족공산주의 흐름이 제도화되었고, 이로부터 불과 5년 뒤 슘스키가 스탈린과 충돌한 '슘스키즘' 논쟁은 사실상 보로트비스트 원칙의 재천명이었다.

'슘스키즘' 논쟁: 우크라이나화와 민족공산주의, 1925–1927

1925년, 우크라이나 교육인민위원 슘스키는 스탈린에게 서한을 보내 CP(b)U 제1서기 라자리 카가노비치를 우크라이나인 블라스 추바리로 교체할 것, 우크라이나화를 가속화하여 도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탈러시아화를 추진할 것, 당과 노동조합 지도부에 우크라이나인 간부를 대거 등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 내 공화국이 실질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민족공산주의(national communism) 원칙의 실천적 적용이었다.

슘스키는 또한 문화적 탈식민화를 주장한 작가 미콜라 흐빌로비를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흐빌로비는 우크라이나 문화가 러시아적 영향에서 벗어나 서유럽을 지향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우크라이나화 없이는 소비에트 권력이 도시에서 '정복자'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슘스키는 CP(b)U 정치국 회의에서 흐빌로비를 규탄하라는 압력을 거부했다.

스탈린은 1926년 4월 카가노비치에게 보낸 서한에서 '슘스키즘'과 '흐빌로비즘'을 모두 규탄하며, 우크라이나화가 당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에 서우크라이나 공산당(KPZU) 중앙위원회 다수파가 슘스키를 지지하자, 코민테른이 개입해 KPZU 지도부를 분열시켰다. 1927년 2월 슘스키는 모든 우크라이나 내 직위에서 해임되고 모스크바로 전출되었다. 그의 후임인 미콜라 스크리프니크는 우크라이나화 정책 자체를 이어갔지만, 당은 이제 '슘스키즘'을 '민족주의적 일탈'로 공식 낙인찍고 민족공산주의 전반을 억압하는 분수령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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