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범죄를 끝까지 추적한 흐루쇼프의 수석 조사관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당신은 제가 인민의 적이 아님을 알고 계십니다.」 — 유형지에서 흐루쇼프에게 보낸 단 한 줄의 편지, 1954년
1916년 15세로 입당한 구볼셰비키. 흐루쇼프 시기 시베르니크 위원회 수석 조사관으로 키로프 암살·모스크바 재판·카틴 학살이 스탈린의 조작임을 64권으로 입증했다. 콜리마 8년을 견디고 복권.
경력 연표
- 191615세로 RSDLP(b) 입당
- 1918바쿠 코뮌에서 샤우먄 비서; 터키군에 사형 선고, 극적 사면
- 1918–20자캅카스 지하운동, 레닌에게 밀서 전달
- 1920–37바쿠·브랸스크·모스크바 당 간부, 모스크바 시당 조직부장, 중앙통제위원회 위원
- 1937–46체포, 8년형 — 콜리마 수용소
- 1949–54재체포, 무기한 유형 — 크라스노야르스크
- 1956–62KPK 위원, 시베르니크 위원회 수석 조사관 — 키로프 암살·모스크바 재판·카틴 조작 규명
- 1962스탈린의 오흐란카 협력 의혹 공개 요구, 흐루쇼프의 거부로 은퇴
관련 역사 사건
시베르니크 위원회와 스탈린 범죄 규명
흐루쇼프는 1960년 시베르니크 위원회를 발족하며 샤투놉스카야를 수석 조사관으로 임명했다. 콜리마 수용소에서 8년을 보낸 구볼셰비키가 이제 그 체제의 범죄를 공식적으로 규명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샤투놉스카야는 전직 NKVD 요원, 수용소 생존자, 교도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증언을 확보했다. 키로프 암살 사건에서는 당시 교도관을 추적해 니콜라예프가 "NKVD 요원들이 당을 위해 키로프를 쏘라고 4개월간 설득했다"고 외친 현장을 입증했다. 모스크바 재판은 피고들의 자백을 고문과 협박으로 조작한 것임을 밝혀냈고, 카틴 학살이 소련이 아닌 나치의 소행이라는 공식 주장도 조작임을 확인했다. 64권 분량의 보고서는 스탈린 테러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문서화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오흐란카(차르 비밀경찰) 협력 의혹을 조사하려 하자 흐루쇼프는 "그것은 안 된다"며 중단시켰다. 샤투놉스카야는 1962년 은퇴했고, 그녀의 미완성 조사 노트는 사후 『지나간 세기에 관하여』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