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국가의 통합을 이끈 사회민주주의자
1946년 4월, 그는 빌헬름 피크와 함께 새로 창립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공동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오토 그로테볼은 바이마르기의 사회민주주의 정치가로, 나치 독재에 맞서 의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고 전후 소련 점령지의 독일 사회민주당을 이끌었다. 그는 처음에는 신중했지만 소련 점령 당국의 압력 속에서 공산당과의 통합을 추진해 1946년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공동 의장이 되었다. 이 통합은 동독 국가의 정치적 토대를 놓았지만, 사회민주당 내부의 자유로운 선택이 억압된 강제 통합이기도 했다. 1949년부터 동독 최초의 정부 수반을 맡은 그는 국가 건설과 소련의 영향력 사이에서 제한된 자율성을 행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9–1964 정부·행정 · 동독
경력 연표
- 1912독일 사회민주당 입당
- 1920–1926브라운슈바이크 주의회 의원
- 1922–1924브라운슈바이크 법무·국민교육 장관
- 1925–1933독일 국가의회 의원
- 1945–1946소련 점령지 독일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
- 1946–1950독일 사회주의통일당 공동 의장
- 1949–1964독일민주공화국 각료회의 의장
- 1960–1964중병으로 사실상 정치 활동 중단
- 1964동베를린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나치 시기: 전권위임법 반대표와 불법 생존
1933년 3월 23일 그로테볼은 사회민주당 의원단과 함께 히틀러의 전권위임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법은 의회의 동의 없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하는 헌법 개정안이었고, 통과되었다. 나치 체제가 들어선 뒤 그는 국가의회 의원직에서 해임되었고 다른 사회민주당원들과 마찬가지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구타당하고 체포·구금되었으며, 결국 브라운슈바이크를 떠나야 했다. 그는 먼저 함부르크로 옮겼고 1938년부터는 베를린에서 청과상 겸 기업 대리인으로 일했다.
베를린에서 그는 브라운슈바이크 시절부터 알던 사회민주당 정치인 에리히 그니프케를 중심으로 한 저항 조직에 참여했다. 다만 이 모임은 나치 체제에 맞선 적극적 저항 행동을 벌이기보다 구성원 간의 연락과 경제적 생존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1938년 8월 그로테볼은 다시 구타당한 뒤 체포되어 반역죄로 인민법원에 기소되었다. 그는 7개월간 미결구금 상태에 있다가 1939년 3월 4일 석방되었고, 법원의 절차는 종결되었다. 1939년 11월 8일 게오르크 엘저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뒤에는 다시 체포되어 약 8주간 구금되었다. 석방 후 그는 베를린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점차 그림에 시간을 쏟았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음모 이후 그는 다시 체포될 것을 우려했으나, 당시 비합법 상태로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슈타포는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전쟁 말년을 이렇게 보냈으며 1945년 베를린 전투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