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적 법 개념을 정식화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의 건설자
'법이란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하고 이 계급의 조직된 힘, 즉 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관계의 체계, 즉 질서이다.' — 『법과 국가의 혁명적 역할』
라트비아 출신 법률가·혁명가. 라이니스와 함께 라트비아 마르크스주의 '신조류' 운동을 이끌었고, 10월 혁명 후 법무인민위원으로 '법원 포고 제1호'를 기초해 소비에트 사법의 토대를 놓았다. 1918~1920년 라트비아 소비에트 정부 수반, 1923년부터 RSFSR 최고재판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 파슈카니스와 공산아카데미 법학부를 창설하고 최초의 『국가와 법 백과사전』을 편집했으며, 법을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하고 국가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관계의 체계'로 정의한 계급적 법 개념은 초기 소비에트 법이론의 출발점이었다.
경력 연표
- 1883–1888리가 김나지움 졸업,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 졸업 — 변호사 개업
- 1888–1897라이니스와 함께 라트비아 마르크스주의 '신조류' 운동 및 신문 『디에나스 라파』 주도
- 1897–1903체포, 7개월 구금 후 뱟카현 5년 유형 — 풍자집 『작은 등에』 공동 집필
- 1906RSDRP 입당, 라트비아 사회민주당 통합대회 주재 — RSDRP 지역조직으로 편입
- 1917.10–11스몰니에서 라트비아 소총병 연락,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 조사위원장 — 법무인민위원으로 '법원 포고 제1호' 기초
- 1918–1920RSFSR 법무인민위원·외무부인민위원, 라트비아 소비에트 정부 수반(1918.12–1920.1)
- 1923–1932RSFSR 최고재판소 초대 소장, 코민테른 국제통제위원회 의장(1924), 『국가와 법 백과사전』 편집장(1925~1927), 소비에트법연구소 소장(1931)
관련 역사 사건
법이론: 계급적 사회관계의 체계로서의 법
스투치카의 법이론은 마르크스주의 법학의 출발점이었다. 1924년 출간된 주저 『법과 국가의 혁명적 역할』에서 그는 법을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하고 이 계급의 조직된 힘, 즉 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관계의 체계(질서)"로 정의했다. 이 정의는 법을 단순한 규범의 집합이 아니라 계급사회의 실제 사회관계로부터 출발시킨 점에서 당대 법학의 근본적 전환이었다.
스투치카는 법의 세 가지 형식을 구분했다. 구체적 형식은 실제 사회관계로서의 법, 즉 생산관계와 계급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법이다. 추상적 형식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성문법·제정법으로서의 '법률'이고, 다른 하나는 법의식, 즉 사람들이 법을 인식하고 정당화하는 관념 체계다. 스투치카에 따르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법학은 구체적 법, 즉 계급적 사회관계 자체를 분석해야 하며, 법률과 법의식은 이 구체적 토대 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예브게니 파슈카니스의 '상품교환형태론'과 생산적인 긴장을 형성했다. 파슈카니스가 법을 상품 교환 관계에서 발생하는 '법적 형식'으로 파악하고 사법(私法)을 법의 원형으로 본 반면, 스투치카는 법의 핵심을 계급적 생산관계에서 찾으며 공법과 사법을 아우르는 보다 포괄적인 틀을 제시했다. 스투치카는 파슈카니스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을 상품교환으로 환원하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소비에트 법의 계급적 성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파슈카니스 또한 후기 저작에서 스투치카의 '법의 내용'으로서의 생산관계 개념을 수용하며 두 사람의 이론은 수렴했다. 1920년대 전반기 두 사람이 공산아카데미 법학부를 함께 이끌며 벌인 이 논쟁은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대표한다. '법을 토대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법을 생산관계로부터 이해하려 한 스투치카의 통찰은 소비에트 법학의 독자적 방법론을 확립한 기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