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리고

Raoul Rigault
프랑스 프랑스 1846–1871 ✕ 처형

파리 코뮌의 경찰 책임자이자 블랑키주의 혁명가

“코뮌 만세! 암살자들에게 죽음을!”

제2제정기 블랑키주의자로 활동하며 공화주의·무신론 신문에 글을 쓰고 정치 활동으로 여러 차례 투옥됐다. 1870년 9월 공화정 선포 뒤 파리 경찰청에서 정치 업무를 맡았고, 1871년 3월 코뮌 봉기 후 경찰청장이 됐다. 코뮌 평의원과 공안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4월 말 검사로 임명돼 인질 정책 집행과 반대파 체포에 관여했다. 피의 주간에 구금 중이던 변호사 귀스타브 쇼데를 처형하게 했고, 1871년 5월 24일 베르사유 정부군에 붙잡혀 재판 없이 총살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공안 담당과 인질 정책

1871년 3월 20일 중앙위원회는 리고를 파리 경찰청에 파견했고, 이틀 뒤 그는 제8구에서 코뮌 평의원으로 선출됐다. 3월 29일 공안위원회에 들어간 뒤에도 경찰청 민간 대표직을 겸했다. 군사 대표 뒤발이 사망한 후 리고는 경찰 조직과 제국기 경찰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 인질과 용의자를 추적하고 체포하는 일을 조직했다. 4월 4일에는 파리 대주교 조르주 다르부아를, 13일에는 변호사 귀스타브 쇼데를 비롯해 뤼리에, 베르제레, 클뤼즐레 등 코뮌 내부의 인물들도 체포했다. 4월 24일 리고는 피의자 심문에서 비밀 보장이 지켜지지 않으면 수사를 이끌 수 없다고 선언했고, 평의원들의 면회도 제한했다. 경찰청장직에서 물러난 뒤 4월 26일 코뮌 검사로 임명되어 항복 후 처형됐다고 보고된 방위군 문제와 인질에 대한 대응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5월 2일 리고는 공안위원회 설치에 찬성표를 던졌다. 5월 17일 그는 유죄인 열 명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회의록에 기록됐지만, 같은 날 인질 사건을 심리할 기소 배심 구성도 제안했다. 5월 22일 인질들을 라 로케트 감옥으로 이송하는 일을 지휘했고, 다음 날 쇼데와 헌병 세 명의 총살을 명령했다. 24일에는 구금된 대주교와 인질 네 명의 처형을 젠통에게 맡겼다. 당시 인질 교환을 검토했다는 설명도 있으나, 이러한 조치들은 그의 재임 중 실제 체포와 처형 명령의 기록을 없애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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