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크센티 나리키예비치 라파바

Авксентий Нарикиевич Рапава
소련 그루지야 1899–1955 ✕ 처형

십 년간 그루지야 경찰기구를 운영한 자

1951년 밍그렐리아 사건으로 체포된 라파바는 자신이 10년간 지휘했던 내부감옥에 갇혀 160일간 잠을 빼앗겼고, 얼음처럼 찬 독방에 수갑을 찬 채 벌거벗겨진 채 버려졌다 — 그가 수하들에게 지시했던 바로 그 고문 수법이었다.

밍그렐리아 출신으로 1920년대 체카에 들어가 1938년부터 10년간 그루지야 NKVD와 국가보안부를 이끌며 대숙청 시기 공화국 보안기구의 핵심 책임자로 활약했다. 베리야의 측근으로서 전간기 그루지야 공안 체제를 구축했으나, 1951년 스탈린의 '밍그렐리아 사건'에 연루됐다가 스탈린 사후 풀려났고, 베리야 몰락 직후인 1953년 7월 재체포되어 1955년 공개 재판 끝에 총살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밍그렐리아 사건과 1955년 트빌리시 재판

라파바의 운명은 스탈린 말년의 권력투쟁과 얽혀 있었다. 1951년 11월, 스탈린의 개인적 지시로 '밍그렐리아 사건'이 개시되었다. 이는 표면적으로 그루지야 검찰·내무 간부들의 뇌물수수와 민족주의 혐의를 겨냥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라파바의 후원자였던 라브렌티 베리야의 세력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었다. 사건은 그루지야 국가보안장관 니콜라이 루하제가 주도했고, 당 제1서기 아카키 므겔라제가 스탈린을 대리해 감독했다.

라파바는 1951년 11월 체포되어 자신이 10년간 운영했던 내부 감옥에 수감되었다. 루하제의 수사관들은 라파바 본인이 수하들에게 가르쳤던 고문 수법, 수갑을 채운 채 얼음처럼 차가운 독방에 방치하고, 160일간 수면을 박탈하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와 함께 미하일 바라미야, 블라디미르 쇼니야 등 베리야 계열의 밍그렐리아 출신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었고, 500명 이상이 연루되었다.

스탈린 사후인 1953년 3월, 베리야는 라파바를 포함한 밍그렐리아 사건 피해자들을 석방하고 복권시켰다. 라파바는 1953년 4월 그루지야 국가통제장관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6월 베리야가 체포되고 7월 17일 라파바도 '베리야 일당'으로 재체포되었다. 1955년 9월 트빌리시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서 라파바는 루하제, 샬바 체레텔리, 콘스탄틴 사비츠키, 니키타 크리먄, 아브라함 하잔 등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11월 15일 총살되었으며, 사후 복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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