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개혁을 주장했으나 외교 협상 권한 없이 파견된 제독
소련 측이 협상 권한을 묻자, 드랙스의 사절단은 정부 승인 없이는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다.
레지널드 드랙스는 영국 해군의 전술과 지휘 개혁을 주장한 제독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주요 지휘직과 참모직을 맡았다. 1939년 8월 그는 프랑스 대표단과 함께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소련과의 군사협력을 논의했지만, 영국 정부의 서면 협상 권한을 받지 못했다. 낡은 상선으로 늦게 도착한 대표단의 무력함은 독일과의 전쟁을 막기 위한 영국·프랑스 외교의 제한과 불신을 드러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6영국 해군 입대, HMS 브리태니아에서 훈련
- 1909『현대 해군 전술』 출판, 참모교육 연구
- 1914–1918대전함 HMS 라이언에서 복무, 주요 해전에 참가
- 1919–1922왕립 해군참모대학 교장
- 1923–1924독일 연합국 해군통제위원회 위원장
- 1932–1934아메리카·서인도 제도 전대 총사령관
- 1935–1938플리머스 해군기지 총사령관
- 1939영국 군사사절단장으로 모스크바 협상 참가
- 1939–1941노어 해군기지 총사령관
- 1943–1945대서양 수송선단 준장
- 1939『모스크바 사절단』 출판
관련 역사 사건
1939년 모스크바 군사협상
1939년 8월 드랙스는 영국 군사사절단장으로 프랑스 사절단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군사협약 체결을 논의했다. 협상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팽창에 맞선 집단안보 구상을 둘러싸고 진행되었으나, 서방 사절단의 권한과 협력 의지는 불신의 대상이었고 소련군의 폴란드·루마니아 통과 요구도 핵심 쟁점이 되었다. 협상의 결렬 원인을 한쪽의 의도적 방해로만 환원하기는 어렵다. 8월 23일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체결 뒤, 드랙스는 보로실로프에게 조약이 체결된 상황에서 대화를 계속할 목적이 없다고 보고 영국 사절단이 떠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사절단에 모스크바에 남아 추가 상황을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이 기록은 협상 마지막 단계의 불확실성과 책임 공방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전체 실패의 책임을 확정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