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하쳅스키 재판의 피고인이 된 라트비아 출신 내전 영웅
1920년 8월 7일 밤, 에이데만이 이끄는 우안집단은 드네프르 강을 도하해 카홉카 교두보를 점령했고, 페레코프에서 60km 떨어진 이 교두보는 브란겔군의 측면과 후방을 겨누는 창끝이 되었다.
라트비아 출신의 소비에트 군사 지휘관이자 작가로, 내전에서 제13군을 지휘하며 카홉카 교두보 방어와 브란겔군 격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내전 영웅이었다. 이후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장과 오소아비아힘 의장으로 적군 간부 양성과 민간 국방훈련 체계를 구축했으나, 1937년 투하쳅스키 사건 피고인으로 총살되고 1957년 복권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 문학·예술
- 1919–1937 군사·지휘 · 소련
경력 연표
- 1916키예프 군사학교 졸업, 16시베리아 예비연대 소위
- 1917–1918중앙시베리아 집행위원회 부의장, 볼셰비키 입당
- 1918–1920내전: 제16·41·46소총사단장, 제13군 사령관, 카홉카 방어
- 1924–1925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
- 1925–1932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장 겸 군사위원
- 1932–1937오소아비아힘 중앙평의회 의장
- 1937체포(5.22), 투하쳅스키 재판 피고, 총살(6.12)
관련 역사 사건
문학 활동
에이데만은 군사 지휘관이면서도 다작의 문필가였다. 그는 모국어인 라트비아어로 시를 썼고, 러시아어로는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산문으로는 내전을 다룬 소설과 단편을 남겼는데, 대표작으로 『초원의 바람』(1926), 『포위된 사람들』(1926), 『돌의 봉기』(1929), 단편집 『의무의 이름으로』(1927)가 있다. 군사사 연구자로서도 활동하여 니콜라이 카쿠린과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내전』(1928)을 집필했고, 선전·군사사 저술인 『돌격대와 도적떼의 소굴』(1921), 『미래 전쟁에서의 화학』(1924) 등을 냈다. 소련 작가동맹 라트비아 분과(라트비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조직)의 위원이자 위원장을 지냈고, 1927년부터 1936년까지 군사 이론지 『전쟁과 혁명』의 책임 편집자를 맡아 적군의 군사사상 발전에 기여했다. 사후인 1959년 리가에서 시와 산문을 모은 선집 『말과 세월』이, 1985년에는 산문 선집 『결투』가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