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링의 뒤를 이은 마지막 공군 총사령관, 마지막으로 원수가 된 독일 군인
1945년 5월 8일 오스트리아에서 미군에게 붙잡힌 그라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독일 공군의 총사령관이지만 내게는 공군이 없다.”
바이로이트에서 태어나 1차 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28기를 격추했고, 1918년 바이에른 군사훈장으로 개인 귀족 칭호 ‘리터 폰’을 얻었다. 1920년 카프 폭동 때 히틀러를 베를린으로 태워 갔다. 1924~1927년 중국 국민정부의 공군 창설을 도왔고, 1934년 재입대해 공군 건설에 참여했다. 2차 대전에서 제5항공군단과 제6항공함대를 지휘했다. 1945년 4월 26일 한나 라이치와 함께 포위된 베를린에 들어가 괴링 대신 공군 총사령관이 되고 원수로 진급했다. 미군에 붙잡힌 뒤 소련에 넘겨질 것을 알고 5월 24일 잘츠부르크에서 히틀러에게 받은 독약으로 자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1.07–1920바이에른군 장교, 1차 대전 관측병·전투기 조종사
- 1924–1927중국 국민정부의 공군 창설 지원
- 1927–1933뷔르츠부르크 민간 비행학교장
- 1934.01.01–1939재입대, 전투기 감찰관·공군 인사국장
- 1939.10–1942.04제5항공군단장
- 1943.05–1945.04제6항공함대 사령관
- 1945.04.26–05.08공군 총사령관, 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