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언론의 중상에 목숨으로 답한 인민전선의 내무장관
죽기 직전 블룸에게 남긴 유서: "그들이 나를 망신시킬 수 없었다면, 적어도 내 죽음의 책임은 지게 될 것이다. 나는 탈영병도, 배신자도 아니다."
릴 시장 출신의 사회당 정치인으로 블룸 내각의 내무장관. 1936년 6월 파업 국면에서 점거 공장에 대한 강제 해산을 거부했고, 인민전선 강령의 첫 항목이던 극우 동맹 해산을 집행했다. 극우 주간지 『그랭구아르』가 1차 대전 중 탈영했다는 날조 기사를 퍼붓자 군 명예심사와 하원의 압도적 표결이 거듭 무고를 확인했지만 캠페인은 멈추지 않았고, 그는 11월 17일 릴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례에는 수십만이 모였고, 그의 죽음은 언론의 명예훼손을 규제하는 입법 논의를 촉발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0–1914릴의 사회주의 학생운동, 당 기관지 기자
- 1914–1918전우의 시신을 수습하러 나갔다 포로가 되어 독일 수용소 억류
- 1925–1936릴 시장
- 1928–1936하원의원, 사회당 노르 연맹 지도자
- 1936.06내무장관, 점거 공장 강제 해산 거부와 극우 동맹 해산 집행
- 1936.07–11『그랭구아르』의 탈영 날조 캠페인, 군 심사와 하원 표결로 거듭 무고 확인
- 1936.11.17릴 자택에서 자살, 장례에 수십만 추모
관련 역사 사건
전쟁 포로 경험과 ‘탈영’ 중상의 재점화
1915년 10월 독일군에 포로가 된 살랑그로는 바이에른 수용소에서 동료들에게 강제노동을 거부하도록 권했고, 그 결과 13개월 동안 징계 수용소에 갇혔다. 건강이 악화되어 스위스를 거쳐 송환되었으며, 프랑스 군사법원은 1916년 1월 탈영 의혹을 배척하고 그를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1936년 극우 언론은 포로 생활과 의료 송환을 왜곡해 과거의 의혹을 되살렸다. 앙리 베카르의 문제 제기 뒤 『악시옹 프랑세즈』와 『그랭구아르』가 벌인 공격은 가믈랭 장군이 이끈 조사위원회가 그를 무고하다고 결론 내리고, 11월 13일 하원에서 블룸 내각이 427표 신임을 얻은 뒤에도 계속되었다. 살랑그로는 아내의 죽음과 어머니의 병환으로 힘든 가운데 11월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는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회의 공식 전기는 군 기록에 근거한 무죄 판결과 이후의 중상 캠페인을 함께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