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바흐 자유군단 출신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을 가장 오래 지내며 대량 학살을 집행한 친위대 장교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으로 유대인 절멸을 앞당길 방법을 시험했다. 부하의 제안에 따라 치클론 B를 가스실에 도입했고, 그곳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바덴바덴의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1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1919년 로스바흐 자유군단에 들어가 발트 지역, 루르, 오버슐레지엔에서 싸웠고, 1922년 나치당에 들어갔다. 1923년 보어만의 사주로 동료들과 교사 발터 카도프를 때려 죽여 투옥되었다. 1934년 친위대에 들어가 해골단으로 옮겼고 다하우와 작센하우젠에서 테오도어 아이케 밑에서 일했다. 1940년 5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다시 1944년 5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을 지내며 치클론 B를 가스실에 도입해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전후 가명으로 숨어 지내다 영국군에 붙잡혀 폴란드에 넘겨졌고, 1947년 폴란드 최고국가재판소의 판결로 교수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