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3월 15일 「민족의 노래」로 페슈트 혁명을 열고 세게시바르에서 실종된 헝가리의 국민 시인
1823년 키슈쾨뢰시에서 슬로바키아계 어머니와 세르비아계 또는 슬로바키아계 이민 2세 아버지 사이에서 페트로비치 샨도르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고 떠돌이 배우와 병사로 지내다 1842년부터 페퇴피라는 이름으로 시를 발표했고, 서사시 『용사 야노시』(1845)로 큰 인기를 얻었다. 「3월 청년들」의 중심으로 12개조의 공동 저자이자 「민족의 노래」의 지은이였으며, 1848년 3월 15일 혁명을 여는 데 핵심 구실을 했다. 혁명이 귀족 정치인들의 손으로 넘어가자 의회를 비판했고 총선에서 낙선했다. 트란실바니아에서 벰 장군 휘하로 싸우다 1849년 7월 31일 세게시바르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다른 이름: 페트로비치 샨도르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2페퇴피라는 이름으로 첫 시 발표
- 1845서사시 『용사 야노시』
- 1848「민족의 노래」, 3월 15일 혁명
- 1848–1849혁명군 장교 (벰의 트란실바니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