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룬제와 함께 첫 소비에트를 세운 이바노보 볼셰비키, 당명 '스트란니크'
1905년 5월, 발라쇼프는 자신의 아파트를 총파업 사령부로 삼아 72일간 7만 직조 노동자의 투쟁을 지휘했고, '콤파니야' 공장 노동자들은 그를 첫 소비에트 대표로 뽑았다.
농민 출신 직조공으로 1898년 RSDLP에 입당해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위원회의 핵심이 되었다. 1905년 프룬제, 아파나시예프와 함께 72일간의 총파업과 러시아 최초의 노동자대표 소비에트를 이끌었으며, 아파나시예프가 흑백파에게 살해된 뒤 시당 위원장을 맡았다. 1908년 체포되어 9년간 시베리아에 유배됐다가 1917년 3월 귀환해 위원장직을 되찾고 체카에서 활동했다. 내전 후 여러 책임직을 거쳤으나, 누적된 박해와 투옥으로 쇠약해진 끝에 192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8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RSDLP 위원회에 입당
- 1905프룬제·아파나시예프와 함께 총파업 지도, 첫 소비에트 대표 선출
- 1905–1908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RSDLP 위원장, 브랸스크·모스크바에서 당 활동
- 1908–1917체포 후 시베리아 유형
- 1917–1918이바노보 볼셰비키 위원장·체카, 내전 전투 참전
- 1919–1925하리코프·폴타바·모스크바에서 당 및 소비에트 직책
관련 역사 사건
1905년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파업과 소비에트
1905년 발라쇼프는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파업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가입한 뒤 노동자 조직 활동을 했으며, 표트르 아파나시예프가 사망한 뒤 시당위원회를 이끌었다. 파업 이후 경찰과 흑백단의 박해를 피해 모스크바로 옮겼고, 브랸스크에서 당 활동을 하도록 파견됐다. 몇 년 뒤 다시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당했으며, 1917년에야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로 돌아왔다. 귀환 후 시당위원장과 소비에트 의원을 맡고 체카에서도 일했다. 지역 박물관이 제공한 약력은 발라쇼프의 파업 지도와 아파나시예프 사후의 당위원회 지도, 이후의 체포·유형 및 귀환을 기록한다. 이는 혁명적 조직 활동과 노동자 투쟁이 경찰의 탄압 아래서도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