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숄로호프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олохов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84 ○ 자연사

『고요한 돈강』을 쓴 러시아·소비에트 소설가

“우리 각자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쓴다. 그리고 우리의 심장은 당과 인민의 것이다.” 소비에트 작가 제2차 전연합 대회 연설(1954)에서.

러시아 제국 돈 지방의 비코사크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러시아·소비에트 소설가로, 1925년부터 1940년까지 네 권으로 완성한 『고요한 돈강』은 혁명과 내전이 코사크 마을을 찢어 놓은 10여 년을 그려 냈다. 1932년 콜호스화의 참상을 스탈린에게 서한으로 고발해 곡물 지원과 조사를 이끌어 냈고, 1937~1938년 대숙청기에도 탄원으로 지역 간부들을 구해 냈다. 충성스러운 당원으로서 1932년 입당해 1937년 최고소비에트 대의원이 되었으나, 1966년 시냐프스키-다니엘 재판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지식인들과 갈라섰다. 196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84년 뵤셴스카야에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개간된 처녀지』, 콜호스화의 문학적 기록 (1932–1960)

숄로호프가 『고요한 돈강』 집필 중이던 1930년, 돈 강변에서는 전면적 콜호스화와 쿨라크 청산이 한창이었다. 그는 「사건의 뜨거운 흔적을 따라」 즉시 새로운 소설에 착수했다. 원제는 『피와 땀으로』였으나, 1932년 잡지 『노비 미르』에 『개간된 처녀지』라는 제목으로 1부가 연재되었다. 25,000인대 운동으로 그레먀치 로그 농촌에 파견된 전직 해군 출신 공산주의자 세묜 다비도프가 마카르 나굴노프, 안드레이 라즈묘트노프와 함께 콜호스를 세워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범이자 동시에 집단화의 고통과 모순을 회피하지 않은 작품으로 즉시 주목받았다.

2부는 전쟁 직전 완성되었으나 1942년 뵤셴스카야 폭격으로 원고가 소실되었다. 숄로호프는 1950년대 초 다시 집필해 1959년에야 완간했고, 이듬해 레닌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중국에서 널리 번역되어 중국 사회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설 속 가장 사랑받는 인물인 슈카리 할아범의 동상은 1981년 로스토프나도누에 세워졌다.

1933년 4월,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돈 강변 뵤셴스카야에 살던 20대의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는 1933년 봄, 자기 고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곡물 조달 목표를 채우려는 지방 간부들이 농민들의 종자와 식량까지 쓸어 갔고, 할당량을 못 채운 콜호스니크들에게 구타와 한겨울 축출, 모의 처형까지 동원되고 있었다. 4월 4일과 16일, 그는 스탈린에게 장문의 편지 두 통을 보내 조달 작전에서 자행된 학대 방법들을 이름과 날짜를 들어 낱낱이 고발하고, 굶주리는 뵤셴스카야와 베르흐네돈스코이 지구에 곡물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스탈린은 답장을 보냈고 실제로 움직였다. 두 지구에 십수만 푸드의 곡물 지원이 결정됐고, 시키랴토프가 이끄는 조사위원회가 파견돼 일부 간부가 처벌받았다. 그러나 5월 6일자 답장에서 스탈린은 작가의 시야가 한쪽에 치우쳤다고 반박했다. 존경받는 곡물 재배자들이 소비에트 권력을 상대로 「굶주림을 이용한 조용한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 전문이 공간된 이 왕복 서한은 기근기의 조달 폭력을 내부에서, 실명으로, 최고 권력자를 향해 고발한 가장 극적인 문서 중 하나다. 체제 안의 충성스러운 작가가 체제의 폭력을 문서로 남긴 이 사례는, 대기근 연구의 표준 저작들에서 핵심 사료로 인용된다. 숄로호프는 1938년 대숙청기에도 로스토프 NKVD의 조작 수사에 걸린 지역 간부들을 위해 다시 스탈린에게 직접 탄원해 이들을 구해 냈다.

1941~1945년, 전쟁 특파원 시절

1941년 6월 23일, 전쟁이 시작된 다음 날 숄로호프는 뵤셴스카야 마을 주민들 앞에서 연설했고 7월 초에는 군에 소집되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그는 소련정보국(소빈포름뷰로)과 『프라우다』,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의 전쟁 특파원으로 종군했다. 서부 전선(1941년 8월~10월), 남서부 전선(1941년 12월~1942년 1월), 남부 전선(1942년 1월~9월), 스탈린그라드 전선(1942년 9월~1943년 5월), 다시 서부 전선(1943년 5월~1945년 3월), 제3벨로루시 전선(1945년 3월~5월)을 거쳤고, 1941년 연대 정치위원 계급을 받았다. 1945년 12월 대령 계급으로 제대했다.

그는 전선의 참상을 고향 돈 강변에서 직접 목격했다. 1942년 2월에는 소련정보국 책임자의 호출로 쿠이비셰프로 가던 폭격기가 착륙 중 전복되어 네 명이 죽고 숄로호프 자신도 심한 뇌진탕을 입었다. 그해 6월 뵤셴스카야 폭격으로 자기 집 마당에서 어머니 아나스타시야 다닐로브나가 사망했다.

전시의 대표적 작품은 1942년 6월 카미신에서 쓴 단편 「증오의 교훈」이다. 『프라우다』는 전쟁 1주년인 6월 22일에 이 이야기를 실어 게재 시점을 전쟁 개시 기념일에 맞췄고, 다음 날 『크라스나야 즈베즈다』가 전재했다. 1943년 5월에는 두 신문이 미완성 장편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의 첫 세 장을 여러 호에 걸쳐 발표했다. 이 작품의 단편들은 1942~1944년, 1949년, 1969년에도 다시 공개되었다.

전시에 숄로호프는 『고요한 돈강』으로 받은 스탈린상을 국방기금에 넘겼고, 이후 자비로 전선에 로켓 발사기 네 기를 사서 보냈다. 이 밖에 조국전쟁훈장 1급과 「모스크바 방어」, 「스탈린그라드 방어」, 「독일 격파」 메달을 받았다. 전후에는 『개간된 처녀지』 2부를 완성하고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 집필을 이어 갔으며 단편 「인간의 운명」을 썼다.

1965년, 「고요한 돈강」과 노벨상

숄로호프는 스무 살 무렵부터 돈 카자크의 삶과 혁명, 내전을 그린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을 쓰기 시작해 1928년부터 1940년까지 네 권으로 완성했다. 백군에 가담했다가 파멸해 가는 카자크 그리고리 멜레호프를 주인공으로 삼아 혁명의 적편에 선 사람들의 비극까지 정면으로 그린 이 소설은, 소비에트 문학의 틀 안에서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대담한 서사시로 꼽힌다. 검열과 라프(RAPP) 계열의 공격 속에서도 스탈린은 이 소설의 간행을 허용했고, 젊은 작가가 이런 대작을 썼을 리 없다는 표절 시비가 일찍부터 따라다녔다.

표절설은 냉전기에 솔제니친 등에 의해 되살아났으나, 1999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1, 2권의 자필 초고를 발굴해 감정했고, 계량문체론 연구들도 저자가 숄로호프임을 뒷받침했다. 오늘날 학계의 다수 결론은 표절설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1965년 스웨덴 한림원은 「돈 강 서사시에서 러시아 민중의 삶의 한 역사적 국면을 그려 낸 예술적 힘과 성실성」을 이유로 숄로호프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소련 정부의 축하 속에 상을 받은 유일한 소련 작가였다. 만년의 그는 시냡스키와 다니엘 재판 때 두 작가를 가혹하게 비난하는 연설을 하는 등 체제 강경파의 목소리를 냈고, 이는 그의 명성에 그늘로 남았다. 그는 평생 뵤셴스카야를 떠나지 않았고, 노벨상 상금을 고향의 학교 건설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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