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숄로호프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олохов
소련 러시아 1905–1984 ○ 자연사

돈강처럼 체제 곁을 고요히 흐른 노벨상

“나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썼다. 그리고 내 심장은 당의 것이다.” (1965)

스무 살에 『고요한 돈강』을 쓰기 시작해, 내전이 코사크 마을을 찢는 풍경을 소비에트 문학에서 가장 정직하게 담았다. 너무 이른 걸작이라 대필 시비가 평생 따라붙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과 반대로 걸었다: 당에 충성했고, 시냐프스키-다니엘 재판의 피고들을 총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연단에서 말했다. 1965년 노벨상을 받았고 1984년 자기 침대에서 죽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개간된 처녀지』, 콜호스화의 문학적 기록 (1932–1960)

숄로호프가 『고요한 돈강』 집필 중이던 1930년, 돈 강변에서는 전면적 콜호스화와 쿨라크 청산이 한창이었다. 그는 「사건의 뜨거운 흔적을 따라」 즉시 새로운 소설에 착수했다. 원제는 『피와 땀으로』였으나, 1932년 잡지 『노비 미르』에 『개간된 처녀지』라는 제목으로 1부가 연재되었다. 25,000인대 운동으로 그레먀치 로그 농촌에 파견된 전직 해군 출신 공산주의자 세묜 다비도프가 마카르 나굴노프, 안드레이 라즈묘트노프와 함께 콜호스를 세워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범이자 동시에 집단화의 고통과 모순을 회피하지 않은 작품으로 즉시 주목받았다.

2부는 전쟁 직전 완성되었으나 1942년 뵤셴스카야 폭격으로 원고가 소실되었다. 숄로호프는 1950년대 초 다시 집필해 1959년에야 완간했고, 이듬해 레닌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중국에서 널리 번역되어 중국 사회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설 속 가장 사랑받는 인물인 슈카리 할아범의 동상은 1981년 로스토프나도누에 세워졌다.

1933년 4월,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돈 강변 뵤셴스카야에 살던 20대의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는 1933년 봄, 자기 고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곡물 조달 목표를 채우려는 지방 간부들이 농민들의 종자와 식량까지 쓸어 갔고, 할당량을 못 채운 콜호스니크들에게 구타와 한겨울 축출, 모의 처형까지 동원되고 있었다. 4월 4일과 16일, 그는 스탈린에게 장문의 편지 두 통을 보내 조달 작전에서 자행된 학대 방법들을 이름과 날짜를 들어 낱낱이 고발하고, 굶주리는 뵤셴스카야와 베르흐네돈스코이 지구에 곡물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스탈린은 답장을 보냈고 실제로 움직였다. 두 지구에 십수만 푸드의 곡물 지원이 결정됐고, 시키랴토프가 이끄는 조사위원회가 파견돼 일부 간부가 처벌받았다. 그러나 5월 6일자 답장에서 스탈린은 작가의 시야가 한쪽에 치우쳤다고 반박했다. 존경받는 곡물 재배자들이 소비에트 권력을 상대로 「굶주림을 이용한 조용한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 전문이 공간된 이 왕복 서한은 기근기의 조달 폭력을 내부에서, 실명으로, 최고 권력자를 향해 고발한 가장 극적인 문서 중 하나다. 체제 안의 충성스러운 작가가 체제의 폭력을 문서로 남긴 이 사례는, 대기근 연구의 표준 저작들에서 핵심 사료로 인용된다. 숄로호프는 1938년 대숙청기에도 로스토프 NKVD의 조작 수사에 걸린 지역 간부들을 위해 다시 스탈린에게 직접 탄원해 이들을 구해 냈다.

1965년, 「고요한 돈강」과 노벨상

숄로호프는 스무 살 무렵부터 돈 카자크의 삶과 혁명, 내전을 그린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을 쓰기 시작해 1928년부터 1940년까지 네 권으로 완성했다. 백군에 가담했다가 파멸해 가는 카자크 그리고리 멜레호프를 주인공으로 삼아 혁명의 적편에 선 사람들의 비극까지 정면으로 그린 이 소설은, 소비에트 문학의 틀 안에서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대담한 서사시로 꼽힌다. 검열과 라프(RAPP) 계열의 공격 속에서도 스탈린은 이 소설의 간행을 허용했고, 젊은 작가가 이런 대작을 썼을 리 없다는 표절 시비가 일찍부터 따라다녔다.

표절설은 냉전기에 솔제니친 등에 의해 되살아났으나, 1999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가 1, 2권의 자필 초고를 발굴해 감정했고, 계량문체론 연구들도 저자가 숄로호프임을 뒷받침했다. 오늘날 학계의 다수 결론은 표절설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1965년 스웨덴 한림원은 「돈 강 서사시에서 러시아 민중의 삶의 한 역사적 국면을 그려 낸 예술적 힘과 성실성」을 이유로 숄로호프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소련 정부의 축하 속에 상을 받은 유일한 소련 작가였다. 만년의 그는 시냡스키와 다니엘 재판 때 두 작가를 가혹하게 비난하는 연설을 하는 등 체제 강경파의 목소리를 냈고, 이는 그의 명성에 그늘로 남았다. 그는 평생 뵤셴스카야를 떠나지 않았고, 노벨상 상금을 고향의 학교 건설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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