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칭링

宋庆龄
보위중국동맹 마르크스-레닌주의 중국 중국 1893.1.27.–1981.5.29. ○ 자연사

쑨원의 부인으로 국민당 좌파에 남아 인민공화국의 국가부주석이 된 인물

1922년 반란 때 남아 쑨원의 탈출을 엄호하며 ‘중국은 나 없이도 되지만 당신 없이는 안 된다’고 말했다. 1981년 5월 16일, 죽기 몇 주 전 공산당에 입당해 명예주석이 되었다.

상하이의 부유한 기독교 집안 쑹씨 세 자매의 둘째로, 1915년 쑨원과 결혼했다. 1927년 장제스의 반공 정변에 반대해 국민당 좌파의 상징이 되었고 모스크바로 갔다가 1930년대 상하이에서 민권보장동맹을 이끌었다. 항일전쟁기 홍콩에서 보위중국동맹을 조직해 공산당 근거지에 물자를 보냈다. 1949년 인민공화국의 중앙인민정부 부주석이 되었고 1981년 사망 직전 공산당에 입당해 명예국가주석 칭호를 받았다. 동생 쑹메이링은 장제스의 부인이었다.

다른 이름: 송경령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1년 이후 상하이와 홍콩의 항일·구호 활동

1931년 독일에서 돌아온 쑹칭링은 국민당 정부가 일본에 맞서기보다 공산당과 군벌을 먼저 진압하려는 정책을 비판하며, 그 정책이 민중의 저항을 억누른다고 주장했다. 코민테른의 지원 아래 모스크바와 연락을 이어갔고, 진겅·랴오청즈·천두슈 등 공산당 지도자들의 구출에 관여했다. 또한 비서 리윈을 통해 중국공산당과 연락했으며, 마오쩌둥의 요청으로 의사 마하이더와 기자 에드거 스노를 옌안에 보냈다. 1934년 코민테른 메모에 따르면 현지 소련 대표는 그녀를 공산당에 입당시키는 것이 오히려 그녀의 독자적 가치를 잃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활동은 당시 그녀가 공산당원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1937년 12월 홍콩으로 옮긴 뒤에는 항전과 국제 연대를 호소하는 글을 발표했다. 1938년 홍콩에서 중국보위동맹을 창설해 중국의 항전 지원을 위한 국제적 지지를 모으고, 구호 물자를 마련하며 소식지를 발행했다. 1945년 12월 이 단체는 중국복리기금으로 개편되었고, 1950년 8월 중국복리회로 개칭되었다. 이 조직은 공산당 계열 단체와 군대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는 한편 아동 복지와 사회복지 활동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