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아다모비치 메싱

Станислав Адамович Мессинг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폴란드 1890–1937 ✕ 처형

제르진스키의 폴란드 전우, 체카의 초석을 놓고 야고다의 조작에 맞서다

1926년 9월 26일, 레닌그라드 OGPU 청사 집무실에서 18세의 하리코프 청년 아나톨리 트루바가 권총을 난사했다. 메싱은 책상 아래로 몸을 피해 살아남았고, 트루바는 곧 총살당했다.

바르샤바의 유대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1908년 폴란드 사회민주당에 입당, 펠릭스 제르진스키와 유제프 운쉴리히트의 신임을 얻었다. 모스크바 체카 위원장(1921)과 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체카-OGPU 수장(1921–1929)을 거쳐 1929년 OGPU 제2부의장 겸 해외부(INO) 부장으로 승진, 미하일 트릴리세르와 아르투르 아르투조프 사이 2년간 소련 대외첩보를 지휘했다. 겐리흐 야고다가 조작한 '봄'(Весна) 사건에 반대했다가 1931년 해임되어 대외무역으로 밀려났고, 1937년 폴란드 간첩 혐의로 총살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해외정보부(INO) 수장과 대외첩보의 개편 (1929~1931)

1929년 10월 27일 메싱은 OGPU 제2부의장으로서 해외정보부(ИНО, INO) 부장을 맡아 미하일 트릴리세르를 이어 1931년 7월 31일까지 소련 대외첩보를 지휘했다. 그는 전임자와 달리 독자적 부서 개편을 단행해, 종전의 해외부와 외국인 등록과를 대신해 8개 과 체제를 세웠다. 불법정보(1과), 출입국 문제(2과), 미국·유럽 주요국 정보(3과), 핀란드·발트 국가 정보(4과), 백군 망명자 정보(5과), 동방 국가 정보(6과), 경제정보(7과), 과학기술정보(8과)가 그것이다.

조직도 확대됐다. 1930년 무렵 ИНО 중앙기구 인원은 122명으로 늘어 그 절반가량이 해외에서 활동했고, 이 시기 정보활동의 우선순위도 재정비됐다. 영국·프랑스·독일·폴란드·루마니아·일본이 주요 정보 대상으로 명시됐으며, 간섭 계획의 적발, 경제 봉쇄 구상의 파악, 비밀 군사·정치 협정 문서의 입수, 그리고 통상 경로로 얻을 수 없는 기술 자료의 확보가 새로운 전략 과제로 제시됐다.

인사에서도 메싱의 재임 기간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1930년 1월 1일자로 아르투르 아르투조프가 ИНО 부장 자리에 임명되어 그 아래에서 불법정보 분야를 강화했고, 알렉산드르 슬루츠키와 M. S. 로즈만이 그의 보좌역을 맡았다. 동시에 그는 OGPU 제2부의장직을 겸해 외교정보뿐 아니라 기관 전체의 지도부에 속해 있었다. 트릴리세르 퇴임 후 정보기구의 인적 구성과 해외 레지덴투라 운영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당대의 관측은 이 개편을 두고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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