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표도로비치 테보샨

Иван Фёдорович Тевосян
소련 아제르바이잔 1902–1958 ○ 자연사

스탈린 공업화의 금속 관료

1930년, 28세 나이에 철금속 부문 책임자로 임명되자 오르조니키제에게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책상보다 용광로를 택한 이 결정이 그를 소련 최고의 금속 전문가로 만들었다.

슈샤 출신 아르메니아인으로, 광산아카데미 졸업 후 엘렉트로스탈 공장에서 강철 생산을 익혔다. 특수강 트레스트 관리자로 두각을 드러내 방위공업·조선 인민위원부를 거쳐 1940년 철금속 인민위원이 되었다. 전시에는 남부·중부 금속공장을 우랄 너머로 대피시키고 탱크·항공기·탄약용 특수강 생산을 지휘해 1943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전후 부수상 겸 철금속장관으로 재건을 이끌며 소련 원자력 계획의 우라늄 공급도 관리했다. 1938년 독일 연수 이력으로 '독일 스파이' 의심을 받았으나 스탈린의 개인적 개입으로 살아남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8년 체포 위기: 루뱐카 심문과 스탈린의 개입

1938년 대숙청이 절정에 달했을 때, 테보샨의 매형 레본 미르조얀(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이 체포되고 누이 율리야도 함께 끌려갔다. 1929~1930년 독일·체코슬로바키아·이탈리아 금속공장 연수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독일에서 포섭된 스파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체포가 임박했음을 직감한 테보샨은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 결백을 호소했다. 스탈린은 몰로토프·미코얀·예조프·베리야로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테보샨은 루뱐카에서 심문을 받았다. 사실상 체포된 상태였다. 위원들은 스탈린에게 '체포 근거가 없다'고 보고했다. 며칠 뒤 스탈린은 친필 쪽지를 보내왔다: '당신의 정직함에 대해 나는 의심한 적도 없고 지금도 의심하지 않소. 미르조얀에 관해서는, 신은 그와 함께하길, 잊어버립시다. 당신 누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소.' 쪽지 한 장이 그의 목숨을 구했지만, 율리야는 끝내 구출되지 못하고 고문으로 정신을 잃었다. 스탈린이 테보샨을 살린 이유는 분명했다: 전쟁을 앞둔 시점에 소련의 철강 생산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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