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파」의 재무장관, 1952년 화폐개혁을 빌미로 숙청되어 아이우드 감옥에서 죽은 세케이 헝가리인 공산주의자
1952년 2월 29일부터 3월 1일까지 열린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화폐개혁의 「과오」는 루카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그를 변호하려 한 파우케르와 제오르제스쿠는 석 달 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길을 밟았다.
트란실바니아 세케이 지방의 헝가리인 가정에서 루커 라슬로로 태어나 철도 공장 노동자로 일했고, 1919년 헝가리 혁명 뒤 루마니아 노동운동에 들어가 1920년대 초 공산당에 가입했다.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40년 체르너우치 감옥에 있다가 소련군의 북부 부코비나 점령으로 풀려나 소련 시민이 되었고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뽑혔다. 전쟁 중 모스크바에서 아나 파우케르와 함께 망명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을 이끌었고, 1944년 귀국해 정치국원·중앙위 서기가 되었다. 1947년 11월부터 재무장관으로서 화폐 안정화와 국유화 재정을 맡았으나, 1952년 1월 화폐개혁의 실행 오류가 빌미가 되어 3월 초 전원회의에서 「우편향」으로 규탄되고 8월 체포되었다. 1954년 10월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1963년 아이우드 감옥에서 죽었다. 1968년 차우셰스쿠 지도부의 당 전원회의가 그를 사후 복권했다.
다른 이름: 루커 라슬로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9루마니아 노동운동 참여
- 1920년대–1940공산당 입당, 여러 차례 투옥
- 1940체르너우치 감옥 석방, 소련 시민·우크라이나 최고회의 대의원
- 1944귀국, 정치국원·중앙위 서기
- 1947–1952재무장관
- 1952「우편향」 규탄, 해임·체포
- 1954사형 선고, 종신형 감형
- 1963아이우드 감옥에서 사망
- 1968사후 복권
관련 역사 사건
전후 당 지도부와 1952년 숙청
1948년 루마니아 노동자당 제1차 대회에서 게오르기우데지는 서기장에 재선되었고, 아나 파우케르·바실레 루카·테오하리 제오르제스쿠는 서기국의 다른 세 위원이 되었다. 전후 당 지도부는 전쟁기 국내에 남은 세력, 모스크바로 피신한 세력, 국내에서 비밀활동을 한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루카는 파우케르가 이끈 모스크바파의 핵심 인물로 꼽혔다. 이러한 구분은 이후 숙청 대상의 윤곽과 겹쳤다.
1952년 2월 말과 3월 초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루카·파우케르·제오르제스쿠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어 결국 세 사람은 지도부에서 제거되었다. 역사가 데니스 델레탕은 공격의 배경이 스탈린의 압력이었는지 루마니아 당 지도부 내부의 권력투쟁이었는지는 여전히 추측의 영역이라고 지적한다. 6월 게오르기우데지는 루카가 중공업 발전을 늦추고 농촌의 부유층을 보호했으며 자본주의와 투기를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루카는 파우케르와 달리 급격히 정치적으로 제거되었고, 델레탕에 따르면 고문을 받았으며 영국·미국을 위한 간첩 혐의에 퍼트러슈카누를 연루시키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소련 지도부의 변화로 대규모 공개재판 압력이 약해졌고, 델레탕은 이것이 루카 사건의 진행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서술한다. 숙청의 정확한 원인에 관한 불확실성과 루카에 대한 강압은 구별해 서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