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의 퇴위를 직접 받아내고 백군 이데올로그가 된 두마의 군주제 보수주의자
프스코프 역의 차르 전용 열차에서, 나흘째 면도도 씻지도 않은 슐긴에게 황제의 측근이 말했다: '이 피자크 차림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오.'
바실리 슐긴은 러시아 제국 말기 두마(II·III·IV대)의 핵심 보수정치인이자 《키예블랴닌》 편집자로, 강력한 러시아 민족주의와 입헌군주제를 주창했다. 1917년 3월 알렉산드르 구치코프와 함께 프스코프로 가 니콜라이 2세의 퇴위를 직접 받아냈으나, 혁명의 파국을 막지는 못했다. 남북전쟁기 백군의 이데올로그로 활동하고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했으며, 1944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블라디미르 중앙교도소에서 12년간 수감되었다. 1956년 사면 후 소련에 남아 회고록을 집필하고 1965년 다큐멘터리 《역사의 심판》에 출연하여, 패배했으나 굴복하지 않은 구체제의 산 증인이 되었다.
경력 연표
- 1907–1917II·III·IV대 두마 의원 (볼린현)
- 1913–1917《키예블랴닌》 편집자
- 1915진보블록 공동창설, '진보적 민족주의자' 그룹 지도
- 1917.3구치코프와 프스코프에서 니콜라이 2세 퇴위 접수
- 1918–1920백군 운동 선전가·이데올로그, 《로시야》·《벨리카야 로시야》 편집
- 1920–1944유고슬라비아 망명, 회고록 《날들》·《삼도시》 집필
- 1947–1956블라디미르 중앙교도소 25년형 수감 (12년 복역)
- 1956–1976사면 후 블라디미르 거주, 《레닌의 실험》 집필, 영화 《역사의 심판》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