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의 정점에서 방아쇠를 당긴 '북캅카스파' 부인민위원
1937년 7월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로즈넨스키 라보치」의 부고는 그가 '잠깐의 병을 앓다 심장파열로 사망'했다고 알렸다.
우크라이나 체카 방첩부에서 니콜라예프-주리드, 다긴 등과 함께 복무를 시작해 1923년 예브도키모프를 따라 북캅카스로 옮겨 간 '북캅카스파' 체키스트다. 1936년 여름 카루츠키의 후임으로 서시베리아 변경주 NKVD 국장이 되었고, 몇 달 뒤 모스크바 중앙 기구로 불려 올라가 국가보안총국 비밀정치부장과 방첩부장을 거쳐 내무 부인민위원까지 올랐다. 1937년 7월 2일 수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며칠 뒤 권총 자살했으며, 나우모프는 이를 경력이 상승하던 때에 일어난 죽음으로 특기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9–1923 보안·정보·치안 · 소련 · 국가보안 기관
경력 연표
- 1919–1923우크라이나 체카 방첩부 요원
- 1923–1936북캅카스 OGPU·NKVD, 예브도키모프 그룹
- 1936서시베리아 변경주 NKVD 국장
- 1936–1937NKVD 국가보안총국 비밀정치부장
- 1937내무 부인민위원 겸 방첩부장
- 1937수훈 며칠 뒤 권총 자살
서시베리아의 사건 수사와 모스크바 승진
1936년 7월 서시베리아 변경주 NKVD 국장에 임명된 쿠르스키는 9월 23일 쿠즈바스의 첸트랄나야 광산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 광산 경영진을 사보타주 혐의로 체포했다. 그 수사에서 서시베리아의 이른바 트로츠키주의 조직을 적발했다고 발표했고, 체포자들 가운데 일부는 1936년 11월 노보시비르스크 재판에 이어 1937년 1월 모스크바의 반소비에트 트로츠키주의 센터 재판에서도 피고인으로 등장했다. 전기 자료는 이 사건들을 근거 없는 사보타주 사건과 조작된 재판으로 기술한다. 1936년 11월 쿠르스키는 모스크바로 옮겨져 NKVD 국가보안총국 비밀정치부장이 되었고, 1937년 4월 내무인민위원 대리 겸 제1부장에 임명됐다. 6월에는 제3부(방첩)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7월 2일 레닌훈장을 받았다. 그는 7월 8일 자살했다. 당대 공개 부고는 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며, 그 보도와 실제 사망 경위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