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쿠르스키

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Кур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우크라이나 출생, 유대인) 1897–1937 ✕ 자살

경력의 정점에서 방아쇠를 당긴 '북캅카스파' 부인민위원

1937년 7월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로즈넨스키 라보치」의 부고는 그가 '잠깐의 병을 앓다 심장파열로 사망'했다고 알렸다.

우크라이나 체카 방첩부에서 니콜라예프-주리드, 다긴 등과 함께 복무를 시작해 1923년 예브도키모프를 따라 북캅카스로 옮겨 간 '북캅카스파' 체키스트다. 1936년 여름 카루츠키의 후임으로 서시베리아 변경주 NKVD 국장이 되었고, 몇 달 뒤 모스크바 중앙 기구로 불려 올라가 국가보안총국 비밀정치부장과 방첩부장을 거쳐 내무 부인민위원까지 올랐다. 1937년 7월 2일 수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며칠 뒤 권총 자살했으며, 나우모프는 이를 경력이 상승하던 때에 일어난 죽음으로 특기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서시베리아의 사건 수사와 모스크바 승진

1936년 7월 서시베리아 변경주 NKVD 국장에 임명된 쿠르스키는 9월 23일 쿠즈바스의 첸트랄나야 광산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 광산 경영진을 사보타주 혐의로 체포했다. 그 수사에서 서시베리아의 이른바 트로츠키주의 조직을 적발했다고 발표했고, 체포자들 가운데 일부는 1936년 11월 노보시비르스크 재판에 이어 1937년 1월 모스크바의 반소비에트 트로츠키주의 센터 재판에서도 피고인으로 등장했다. 전기 자료는 이 사건들을 근거 없는 사보타주 사건과 조작된 재판으로 기술한다. 1936년 11월 쿠르스키는 모스크바로 옮겨져 NKVD 국가보안총국 비밀정치부장이 되었고, 1937년 4월 내무인민위원 대리 겸 제1부장에 임명됐다. 6월에는 제3부(방첩)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7월 2일 레닌훈장을 받았다. 그는 7월 8일 자살했다. 당대 공개 부고는 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며, 그 보도와 실제 사망 경위는 달랐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