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니키포로비치 말린

Владимир Никифорович Мал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인 1906–1982 ○ 자연사

당 중앙 문서 흐름을 11년간 통제한 총무부장

1964년 10월 흐루쇼프 실각 직후 브레즈네프 보좌관들이 총무부를 우회해 문서를 유통시키자 말린은 일기에 썼다: "이중 지휘계통이 생겨서 어느 문서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된다."

1954년부터 1965년까지 CPSU 중앙위 총무부장으로 정치국과 중앙위를 오가는 모든 문서를 통제한 당 기구의 핵심 관리자였다. 전쟁 시기에는 중앙 빨치산운동 사령부 정치국장 겸 부사령관으로 점령지 파르티잔 활동을 조직했고, 벨라루스 공산당 제3서기를 지냈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흐루쇼프 실각 직후 정치국 회의에서 직접 속기록을 작성한 그의 노트는 소련 지도부 의사결정의 내부를 보여주는 사료다. 1965년 브레즈네프가 측근 체르넨코를 후임에 앉히며 아카데미 사회과학원 총장으로 전출된 것은 브레즈네프식 후원 인사의 전형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빨치산 운동의 정치·행정 조정과 전후 복구

말린은 1942년 1월부터 중앙 빨치산운동 사령부(ЦШПД) 창설 작업에 참여했고, 1942년 5월부터 1944년 1월까지 최고사령부 산하 사령부에서 일했다. 1942년 10월 9일부터 정치국장 겸 폰마렌코 사령부장의 부사령관으로, 점령지의 빨치산 부대와 중앙 지휘부를 잇는 정치·조직 업무를 맡았다. 그가 남긴 두 권의 수첩은 부대 규모와 무기·복장·무전기·인쇄용 종이의 보급, 정찰대 편성, 점령지 정보원 운용, 전쟁포로와 빨치산의 당·콤소몰 구성 등을 기록했다. 크림, 카렐리야, 칼미크, 벨라루스 등 여러 지역의 활동과 소련 빨치산, 폴란드 국내군, 민족주의 조직 사이의 접촉도 다뤘다. 기록에는 지역 주민의 빨치산에 대한 태도와 소련 신문·전단에 대한 관심이 담겼으며, 특히 주민과 청년을 독일 노동력으로 강제 동원하는 문제를 거듭 우려했다.

1944년 1월부터 1947년 2월까지 벨라루스 공산당 중앙위 제3서기로 일하면서 해방된 공화국의 복구 업무에도 관여했다. 그의 수첩에는 당 기구 회의, 공장 방문, 당·경제 간부와의 면담을 바탕으로 전쟁 피해와 산업·농업 재건 상황이 기록됐다. 1944년 11월 24일 당 중앙위와 인민위원회의 결정으로 공화국 부상자지원위원회가 설치되자 말린이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벨라루스에 있던 후송 병원을 위해 건물 수리와 개조, 땔감 마련, 침구 제작, 신발 수선 등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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